등록 : 2008.10.28 21:17
수정 : 2008.10.28 21:17
사설
국가인권위원회가 촛불집회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해 집회 참가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권위는 방어 위주 경비원칙 준수, 소화기 사용 금지 등과 함께, 어청수 경찰청장에게 경고하고 일선 경찰 지휘관을 징계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석 달 가까이 피해 시민들과 경찰로부터 두루 의견과 주장을 듣고, 130여 건의 진정 가운데 분명한 증거가 있는 것만 피해 사실로 인정하는 등 엄밀한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경찰의 인권 침해는 이를 통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니, 마땅히 고발 등 법적 절차를 거쳐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독립적 국가기구의 조사 결과인 만큼, 정부와 경찰도 이를 겸허히 받아들여 권한 남용과 인권 침해를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옳다.
그런데도 정부와 경찰은 인권위의 권고를 무시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촛불시위에 대한 경찰의 공권력 행사는 정당한 조처라는 말이 정부 안에서 나오는가 하면, 경찰 자신은 앞으로 집회 대응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태연히 밝히고 있다.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라곤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경찰은 앞서 촛불집회에서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국제앰네스티의 조사 결과도 무시한 바 있다. 누리꾼 구속, 유모차 어머니들 조사 등 대대적 압박도 그치지 않았다. 비판의 목소리를 틀어막기 위해서라면 인권 따위는 나 몰라라 하겠다는 태도다.
그런 정부가 여전히 ‘법질서’를 내세우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인권위는 이번 결정에서, 설령 집회나 시위가 불법이더라도 경찰이 이를 진압·해산할 때는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공권력이 행사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도 명시적으로 이런 원칙을 규정해두고 있다. 연행된 여대생을 집단적으로 군홧발로 짓밟는 행위, 피하거나 구경하는 시민들을 뒤에서 경찰봉으로 내리치는 행위, 부상당한 경찰을 치료하는 의사까지 방패로 찍는 행위 등은 경찰 내부규정에 따르더라도 적법한 공권력 행사나 정당방위가 아니다. 경찰의 이런 폭력까지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따위 논리로 옹호한다면, 내놓고 공포정치를 벌이겠다는 말이 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본이다. 정부가 진정 ‘법대로’를 주장하려면 인권위의 권고부터 즉각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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