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31 20:00
수정 : 2008.10.31 20:00
사설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이 그제 국가정보원법 개정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 범죄조직 관련 보안정보 수집으로 한정한 국정원의 직무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오래전부터 직무범위 확대를 위한 내부 작업을 벌여왔다고 한다. 준비 중인 법안도 국정원법만이 아니다. 함께 정기국회 통과를 추진 중이라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휴대전화·전자우편·메신저에 대한 감청까지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는 테러방지법 제정도 다시 추진된다고 한다.
이들 법안이 통과된 뒤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국정원은 지금도 기업에 시민단체 기부 내용 자료를 요구하는가 하면, 판사에게 재판 중인 사건의 처리 방향을 묻는 등 법률로 정한 직무범위를 넘는 정보수집·감시 활동을 예사로 하고 있다. 이런 제한조차 없어지면 국정원은 공공연히 민간 사찰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사회 전반의 위축은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개인의 통신내용까지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기본권 침해는 더 심해질 것이다. 국정원은 과거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국민을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후퇴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 등 집권세력이 국정원의 권한 확대를 부추기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제금융 위기와 촛불시위 등도 국정원이 미리 정보를 분석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국정원을 효과적인 통치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발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간과 전문 영역의 일까지 정보기관의 통제 아래 두는 게 된다. 전체주의 경찰국가를 만들자는 얘기로도 들린다. 그런 ‘고삐 풀린 괴물’은 민주주의 체제를 위태롭게 만든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은 그동안 몇 차례 환골탈태와 정치 중립을 다짐했다. 힘을 함부로, 또 잘못 쓴 탓이다. 국정원의 권한을 구체적으로 제한한 것은 그런 역사에서 배운 결과다. 이제 국정원이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힘을 늘리려는 잘못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들 말고 다른 쪽이 훨씬 잘할 수 있는 영역을 두고 ‘신안보개념’ 따위로 핑계를 만들어 권한 확대를 시도할 게 아니라, 지금 주어진 권한 내의 일이라도 제대로 하는 게 먼저다. 국정원법 등의 제·개정은 당장 포기하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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