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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2 22:19 수정 : 2008.11.02 22:19

사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한-미 재계회의에 참석한 기업인들에게 했다는 얘기는, 그가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는 “노사문제는 앞으로 달라질 것이다. 위법이나 불법 사례가 발생하면 오히려 기업보다 정부가 문제 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법이나 불법을 저지르는 쪽’을 노동자로 규정하고, ‘피해를 입는’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기업의 불법 행위로 피해를 보는 노동자들을 위해 정부가 뭘 하겠다는 얘기는 없다.

너무 말꼬리를 잡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데서 대통령의 평소 인식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법이다. 불법·위법을 저지르는 건 항상 ‘노동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 부지불식간에 ‘기업보다 정부가 먼저 문제 삼겠다’는 발언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또다른 표현인 셈이다.

노동 문제에서도 법의 엄정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립을 기본 구조로 하는 노동 문제에선, 서로의 이해가 충돌하는 일이 다른 어느 분야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칼로 두부 자르듯 합법, 불법을 명쾌하게 가리기 힘든 사안들도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노사 갈등은 우선 양쪽이 대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고, 그게 안 될 경우엔 정부가 공정한 중재자로서 개입해야 한다는 데 대체적인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고 본다. 이 대통령 발언은 우리 사회의 이런 공감대를 뒤집어엎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온 국민이 힘을 합쳐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다. 이 대통령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한테서 라디오연설이란 형식만 빌려올 게 아니라, 루스벨트가 강조했던 게 뭔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에, 루스벨트는 정부가 소외되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잊지 않았음을, 실업자 구제를 위해 이런저런 정책을 펴고 있음을 설명하고 호소했다. 이제 한국에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다. 이런 시기에 대통령이 분명하게 기업 편에 서서 노동 문제를 다루겠다고 말하면, 어느 노동자가 정부를 믿고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처한 상황은 비슷한데, 1930년대 미국의 대통령과 2008년 한국의 대통령이 하는 말은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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