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05 20:10
수정 : 2008.11.05 20:10
사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은 그간 전략 설정에서 구체적 집행방식까지 혼란과 실패를 거듭해 왔다. 그 결과가 한반도 관련 사안에 대한 우리나라의 발언권 약화와 장기 남북관계 경색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미국 내 강경파와의 공조에 초점을 둔 한-미 동맹 강화에 매달렸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금, 정부의 이런 시도는 설자리가 없게 됐다. 새로 출발한다는 자세로 대북·대외 정책의 기본틀을 다시 짤 때다.
오바마 당선자는 정상회담을 포함한 대북 직접 협상으로 북한 관련 현안을 풀겠다는 뜻을 분명히하고 있다. 평양에 외교대표부를 조기에 설치하겠다는 구상도 흘러나온다. 북한 핵문제 해결의 동력이 북-미 협상으로 옮겨지면서 6자 회담 틀까지 달라질 수 있는 구도다. 이런 상황은 핵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논의 등을 가속화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과정에서 주도적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경기조 대북정책 청산이다. 무엇보다 10·4 정상선언과 6·15 공동선언 이행 의지를 분명히함으로써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보다 앞서가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북한 길들이기에 집착하다가는 오히려 큰흐름에서 벗어나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남북관계 진전을 바탕으로 북-미 협상을 지원하면서 한반도 문제 논의를 주도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한-미 동맹 관련 현안에 대해서는 긴 안목으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미 비현실적인 것으로 드러난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 실체가 모호한 한-미 전략동맹에 집착한 나머지 아프가니스탄 재파병과 미사일 방어체제 참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 참여 확대 등에 동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바마 당선자 쪽이 추구하는 국제적 협조주의는 동북아에서도 유효하다. 우리로서는 다른 나라와 균형외교를 펴나가야 할 당위성이 더 커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서둘 이유 없다
오바마 당선자 쪽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수정 또는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협정이 우리나라 경제와 국민생활에 끼칠 영향 역시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우리가 먼저 비준해 미국을 압박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지금은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크게 흔들리면서 새로운 틀에 대한 범세계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다. 어느 나라나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스스로 놓은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할 수 있다. 우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서두를 이유도 없거니와, 이 협정을 다자 협정보다 우선해 추진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오바마 당선자의 등장은 강국들 틈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 기반을 키워나가야 할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 기회는 우리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때만 현실화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이명박 정부 대북·대외 정책의 근본적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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