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07 22:12
수정 : 2008.11.07 22:12
사설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은 그동안 혼란과 실패를 거듭해 온 이명박 정부의 대북·대외 정책 기조를 바로잡을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은 상황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채 억지 주장을 되풀이한다. 과연 정부가 대북·대외 정책을 제대로 수행할 역량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부 대북정책이 오바마 당선자 쪽과 “엇박자가 아니라 아주 딱 맞는 게 될 것”이라고 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어제 발언이 대표적이다. 10·4 정상선언과 6·15 공동선언을 사실상 무시하고 북한 길들이기에 치중해 온 정부 대북정책 기조는 북-미 정상회담까지 추진하는 오바마 쪽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소외되는 통미봉남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데 유 장관은 오바마 쪽과 기본전략이 같으므로 정부 대북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태연하게 한다. 수준 이하의 착각이 아니라면 바뀐 상황을 인정하기 싫어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유 장관은 또 지금 남북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것은 우리 대북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대화 제의를 전부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는 최선을 다했는데 북쪽이 잘못해 남북관계가 이렇게 오랫동안 경색됐다는 아전인수식 주장이다.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미국만 쳐다보니, 결국 미국이 북쪽에 대화 압력을 가해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대착오적인 ‘청부외교’다.
정부·여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조기처리 방침을 재확인하고 국회 방미단을 곧 미국에 보내기로 한 것 역시 억지 행태다. 협정 내용에 대한 논란에 앞서, 미국 경제 자체가 혼란스러운 때에 무작정 미국과의 시장 통합을 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 협정에 매달리기보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되새기며 경제위기 극복에 집중하기 바란다.
정부는 미국에서 성격이 크게 다른 정권이 들어서게 됐는데도 상황이 바뀐 게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한-미 동맹 강화에 집중해 온 대외·대북 정책의 모순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더 많은 실패와 고립으로 이어질 뿐이다. 이제까지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빨리 제 길을 찾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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