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07 22:13
수정 : 2008.11.07 22:13
사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헌법재판소의 종합부동산세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두고 국회에서 “헌재와 접촉했다”고 말했다. 재정부 세제실장 등이 헌재를 방문해 정부 쪽 의견을 설명했으며, 가구별 합산과세에 대해선 위헌 결정이 나올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강 장관의 이런 발언대로라면, 이미 위헌 의견을 밝힌 정부가 헌재를 상대로 사실상 로비를 한 것이고, 헌재는 결정 방향을 사전에 누설한 셈이 된다. 헌재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의심받을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파문이 커지자 아니라는 해명이 서둘러 나왔지만, 여전히 의혹은 남는다. 강 장관은 애초 주심 재판관을 만난 것으로 들었다고 밝혔다가 재판연구관을 만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석연찮다. 해명대로 연구관을 만났다고 해도 부적절하긴 마찬가지다. 실제 결정문 작성에 깊숙이 관여하는 연구관들이 공식 변론과는 별도로 이해관계자를 만났다면 이런저런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심들이 헌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허물어뜨린다.
재정부 쪽이 실제 적극적인 로비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풀리지 않았다. 강 장관은 그동안 종부세가 위헌이라는 의견을 강하게 밝혀 왔다. 논란이 심한 사안에서 주무 장관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그런 고집스런 ‘소신’ 탓에 이런 일이 빚어졌다고 보는 이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국회 진상조사 등을 통해 분명히 밝혀야 할 문제들이다.
헌재는 이번 일로 큰 상처를 입게 됐다. 헌재를 마치 로비와 탐색·조종이 가능한 기관으로 여기는 듯한 강 장관의 발언으로, 헌재는 헌법기관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중립성과 독립성을 의심받게 됐다. 당장 오는 13일 종부세 위헌 여부 결정에 대해서부터 불신의 눈길이 쏟아질 수 있다. 이는 헌재에 헌법 수호와 국민 기본권 보장의 마지막 보루 구실을 맡긴 헌정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정부가 이번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까닭도 여기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강 장관의 실언이라고 두둔할 게 아니라, 이번 일이 헌법체제와 법질서를 자신 편의에 맞춰 가볍게 다루려는 정부의 태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에 귀기울여야 한다. 강 장관도 장관으로선 어울리지 않는 처신과 인식으로 헌정 질서를 어지럽힌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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