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09 21:57
수정 : 2008.11.09 21:57
사설
서울시교육청이 오늘 서울시내 고등학교 교장과 학교운영위원장을 대상으로 교과서 관련 연수를 연다. 여러 학교가 채택한 근현대사 교과서가 잘못됐다며 이를 수정하고 새로 교과서를 선정하도록 학교장들에게 촉구하는 게 연수의 목적이라고 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 교육청에도 연수 개최를 촉구하고 강사와 자료까지 댄다고 하니, 정권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는 명백한 월권이다. 검정교과서는 해당 교과 교사들의 평가와 추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학교장이 이를 확정하는 등 단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선정하도록 돼 있다.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은 이에 더해 1학기에 사용될 교과서는 6개월 전에 주문을 마쳐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가 이에 따라 이미 지난 8월까지 내년도 근현대사 교과서 선정을 마쳤다. 그런데도 교육청이나 교과부가 학교 자율사항인 교과서 선정에, 그것도 법적 근거도 갖추지 않은 채 뒤늦게 재선정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우격다짐일 뿐이다.
교과부의 역사왜곡 시도가 도를 넘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부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역사 교과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 기존 태도를 하루아침에 바꿔, 새 정권의 입맛에 맞는 쪽으로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려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그런 시도는 역사학자와 교사들의 정면 반발을 샀고, 국사편찬위원회까지 정부의 수정 요청을 거부하면서 벽에 부닥쳤다. 교과서 집필자들도 억지 논리를 들이댄 교과부의 수정권고안을 거부했다. 학문적 양심으로든, 시민적 상식에서든, 검인정 제도의 애초 취지로 보든 정권이 함부로 역사를 뜯어고치고 왜곡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도 할 터이다. 이번 일은 그렇게 뜻을 이루지 못한 정권이 이제 반대 목소리는 아예 외면한 채 힘으로 밀어붙이겠다고 나선 게 된다. 교육의 자율과 정치적 중립은 나 몰라라 하고, 절차적 정당성과 명분 따위도 내팽개치겠다는, 일종의 ‘행패’다.
그런 밀어붙이기는 우리 사회를 상명하달식 관치교육이 판치던 수십 년 전 독재정권 시절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번 연수 이후 일부 교장이 반대나 절차를 무시하고 교과서를 무리하게 바꾸려 한다면 일선 학교 현장에서부터 갈등이 크게 번질 수 있다. 정부와 교육청은 이런 역주행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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