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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0 21:04 수정 : 2008.11.10 21:04

사설

어제 서울시 교육청이 고교 교장과 학교운영위원장을 상대로 역사교과서 연수를 실시했다. 내용인즉 이미 예고된 대로, 근현대사 교과서 6종 가운데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채택해선 안 되며, 교장에게는 그럴 권한과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수정 권한이 있는 저자를 아무리 몰아세워도 뜻대로 안 되자, 이번엔 인사 대상자인 교장을 어르고 또 윽박지른 셈이다. 아무리 철면피라지만, 정부와 교육당국의 조폭만도 못한 행태 앞에서 참담하기만 하다.

가장 목소리를 높인 것은 역시 공정택 교육감이었다. 도둑 제 발 저린 탓이었을 게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아무런 문제 제기도 않다가, 이 정부가 들어서자 돌연 역사교과서 규탄에 앞장섰다. 지난 9월엔 결정되지도 않은 좌편향 교과서 채택 거부를 시도교육감협의회 합의 사항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교장 연수도 그가 처음으로 테이프를 끊었다. 연수에서 그가 특별히 강조한 것은 교과서 선정 과정에서 교장의 역할이었다. 평범한 지적 같지만 교장들에게는, 이런 주문을 회피했을 경우에 대한 경고로 들리는 발언이다. 부교육감은 이를 확인하듯, 교장의 확고한 의지와 리더십을 재촉했다.

연출자인 교육과학기술부 관료들은 심지어 자신이 제정한 검인정 교과서 채택절차 규정이 잘못됐다며 교장들에게 월권을 독려했다. 관련 국장은 담당 교과목 교사협의회의 추천을 거쳐 학교운영위가 확정하면 교장이 임의로 바꿀 수 없는 규정을 독소조항이라고 단정했다. 잘못된 규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법대로’ 정부 고위관료들의 행태다. 누가 법과 제도를 신뢰하며, 정부 정책의 결정과 집행을 따를까.

이번 사태에서 가장 고달픈 사람들은 아무래도 교장 선생님들이 될 것 같다. 검인정 교과서가 도입된 후, 이들은 대부분 정부가 정한 절차에 따라 특정 교과서를 선정하고 수업에 활용하도록 지휘하고 감독했다. 그런데 어느날 정치권력이 바뀌자 갑자기 그 교과서를 반교육적이라고 비난하며, 채택 거부를 지시하거나 자신이 월권을 해야 한다. 게다가 그들이 길러낸 제자 가운데 역사학자나 교사, 전공학생들은 일제히 이 정권의 작태를 규탄한다. 그 앞에서 제 얼굴에 침을 뱉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얼마나 착잡할까마는 떳떳한 처신을 기대하는 건 모든 제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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