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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의 ‘절반의 승리’ |
집권 노동당의 과반 의석 확보로 끝난 영국 총선은 여러 면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1900년 창당한 노동당의 첫 3기 연속 집권 성공이라는 역사적 의미 이외에도, 토니 블레어 총리의 실용주의 노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판적 태도가 선거 결과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시작된 ‘노동당 시대’는 이제 최소한 2010년께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는 직전 18년 동안 계속된 보수당 집권기와 어깨를 겨룬다. 이전까지 7년 연속 집권이 가장 길었던 노동당으로서는 위업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노동당은 많은 의석을 잃었다. 주요 원인이 지난 두 차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었던 블레어 총리 자신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특히 그가 ‘부시의 푸들’이라는 말까지 들으며 강행한 이라크 침공 및 이와 관련한 거짓말은 결정적인 감표 요인이 됐다.
블레어 총리가 추구해온 ‘제3의 길’ 노선은 정통 좌파 정당이던 노동당의 위상을 중도 쪽으로 옮겨놓았다. 이에 따라 노동당의 색깔은 중도 정당으로 꼽히는 자유민주당과 비슷해졌으며, 블레어 총리가 실용주의를 남발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자민당이 더 진보적으로 비치게 됐다. 이는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 지지자의 상당수가 자민당 쪽으로 옮겨가도록 만들었다. 낡은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해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아온 보수당도 반사이익을 얻었다. 진보 정치가 새 동력을 얻으려면 블레어 총리가 빨리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정치인에게나 원칙과 유연성의 조화는 쉽지 않지만, 양쪽이 완전히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제동장치가 좋은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듯이, 먼저 원칙이 확고해야 유연해질 수 있는 여지도 커진다. 블레어 총리의 지나친 실용주의를 심판하면서도 노동당의 집권은 유지시킨 영국 유권자의 뜻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의 승리자는 노동당이 아니라 영국 진보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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