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14 19:32
수정 : 2008.11.14 21:36
사설
짐작대로 ‘얼굴 없는 기부 천사’는 배우 문근영씨였다. 그가 2003년부터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기부한 액수는 8억5천만원, 개인 기부자로는 최고 액수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말 것을 모금회에 부탁했다고 하니, 그 마음 씀씀이가 다시 한번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문씨 선행의 울림이 더 큰 까닭은, 유례없는 추운 겨울의 초입에 우리가 서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의 기부문화는 여전히 척박하다. 2006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기부액이 4535원으로, 미국(1만1943원)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그나마 미국은 전체 기부액의 70% 정도를 개인이, 30% 정도를 기업이나 법인이 내지만, 우리는 정반대라고 한다. 가족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사회의 그늘진 곳,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려는 마음이 부족한 것이다.
더구나 올해엔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면서 기부 액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공동모금회 통계를 보면, 올 2~9월 모금액은 630억1600만원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738억7100만원)에 비해 100억원 가까이 줄어든 액수다. 1999년부터 꾸준히 상승하던 전체 모금액이 줄어든 건 처음이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가 강타한 9월 모금액의 감소 폭이 매우 컸다고 하니, 기부자 수나 모금액수는 계속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우리 사회엔 살을 에는 한파가 불어닥칠 것이다.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쫓기거나, 한 끼를 해결하고자 복지단체를 찾는 이웃들의 수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겠다고 말하지만, 그 중 사회복지에 쓰일 돈이 전보다 줄어들지 않으면 다행이다. 정부가 못하면 시민들이 나서 소외된 이웃을 감싸 안는 게 절실하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부자들은 그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못했다.
헌법재판소의 종합부동산세 일부 위헌 결정에 많은 서민이 허탈해하는 건, 법리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돈 많은 이들이 자신이 낸 세금을 되돌려받는 데 기울인 노력의 10분의 1만이라도 남을 돕는 일에 쏟았다면, 우리 사회의 계층 갈등이 이렇게 심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문근영씨의 착한 마음이 이 겨울 추운 거리를 녹이는 등불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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