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18 21:16
수정 : 2008.11.18 21:16
사설
건설회사에 대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인 ‘대주단(채권단) 자율협약’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엊그제로 잡았던 대주단 협약 가입신청의 마감 시한은 아예 없애고, 도급순위 100대 건설사로 했던 자격 조건도 풀었다. 이번주 시작됐어야 할 건설사 구조조정이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것이다.
대주단 협약은 우량 건설사는 살리고 부실 건설사는 퇴출시키고자 마련됐다. 가입 신청을 한 건설사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더라도, 우량한 업체면 채무 상환을 유예해 주고 자금을 지원한다. 부실 정도가 심하면 가입을 받아주지 않아 회생이 어려워진다. 그런데 대주단에 가입 신청을 하는 것 자체가 유동성 위기 기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수주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 때문에 건설사들이 주저하고 있다.
부실 건설사들을 마냥 내버려둘 만큼 우리 건설업계의 재무상태는 건전하지 못하다. 건설업체의 부실은 은행 신용도를 떨어뜨리고 국가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더 시간을 끌다간 건설사 부실이 금융권에 전이돼 동반부실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하루빨리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세계적 금융위기 영향도 있지만 많은 건설사들이 미분양 아파트·상가가 쌓이는 와중에도 무리하게 확장에 나선 탓에 부실을 자초했다.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일차적 책임은 채권은행에 있다. 건설업종은 재무제표 등에 부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옥석 가리기가 쉽지 않다지만, 여신 기준을 엄정히 적용해 과감히 털 것은 털어야 한다. 부실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거나 정치권 등의 외압에 영향을 받아 문제를 키우며 안고가서는 안 된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문제없다며 건설사들이 채권단에 매달리는 배경에는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있다. 금융위원회는 구조조정 지침을 명확히 주지 않은 채 대주단 협약의 목적은 재무구조 개선이라며 건설사들의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 건설사는 물론 은행들로선 구조조정이 아니라 지원 신호로 받아들일 법하다. 정부가 단기 경제지표에 연연해 부실사까지 끌고가려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건설사 구조조정은 경제 위기 극복의 시험대이자 앞으로 있을 저축은행, 조선업체 구조조정의 선례가 될 것이다. 정부와 은행이 신속·공정·투명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에 더해 부실을 키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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