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18 21:17
수정 : 2008.11.18 21:17
사설
아니나 다를까, 현 정부가 강행한 대입 자율화의 결과는 수능 성적순 줄세우기의 확대였다. 이로써 지난 10여년 진행돼 온 공교육 정상화와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대입제도 개선은 물거품이 되고 있다.
4년제 대학들이 엊그제 발표한 2009학년도 정시모집 요강의 요지는, 수능 점수 비중을 크게 늘리고 학생부 비중을 대폭 낮춘 것이다. 이른바 수도권 주요 대학은 모집 인원의 절반을 수능 점수만으로 뽑기로 했고, 나머지 절반도 수능 성적 중심으로, 학생부와 논술은 그저 참조하는 형태로 선발한다. 수능 우선 전형이 없다는 서울대도 1단계에선 수능 점수로 2배수를 선발한다. 내년엔 2단계에도 수능 성적을 20%나 반영한다니 다른 대학과 다를 게 없다.
이들 대학은 수시에서도 학생부 반영률을 낮추려 온갖 꾀를 썼다. 수시는 학생의 적성과 특기, 성실성과 잠재력을 보고 선발하는 제도인데, 실제로는 시험 점수가 높은 학생들을 미리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려대의 경우 일반전형 1단계에서 학생부만으로 뽑겠다고 하고서도, 실제로는 학교에 따라 가점을 주거나, 비교과 전형요소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학생부를 무력화했다.
지필고사 성적순 선발의 문제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학생들을 문제풀이 전문학원이나 고액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아, 학교교육을 황폐화시킨다. 이는 경제적 배경에 따른 사교육 기회의 격차를 낳고, 기회의 격차는 교육 양극화와 교육을 매개로 한 부와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가계의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은 국가적 문제로 비화했다. 입시 명문고인 특목고의 난립은 평준화 정책을 무력화하고, 초·중등생까지 입시교육의 굴레 속으로 떨어뜨린다. 안팎의 압력으로 학교는 학원화하고, 지식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인성을 키우는 교육은 사라진다.
이전 정부가 대학입시에서 학생부를 중시하도록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정부와 대학 사이에 갈등은 많았지만, 대학도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억제라는 사회적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조금씩 제도를 개선해 왔다. 그러나 이제 더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수능 성적순 줄세우기 입시 전형은 중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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