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19 19:10
수정 : 2008.11.19 19:10
사설
브라질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철도파업을 지칭하면서 했다는 말은, 내용도 틀렸을 뿐더러 심각하게 편향된 인식을 또다시 드러냈다는 점에서 지극히 우려스럽다. 이 대통령은 “철도노조가 파업을 한다고 하는데, 어려운 시기에 공기업이 불법파업을 한다면 엄격하게 법으로 다스리겠다”고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조 파업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업 노무담당자의 발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통령이 내용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를 이런 식으로 짓밟아도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철도노조는, 20일 파업을 예고한 철도공사(코레일)와 서울메트로 노동조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두 곳 모두 노사간 의견 차이가 작지 않아 막판 극적인 합의가 이뤄질지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노사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이 노조 파업을 ‘불법’이라고 먼저 규정하고 “엄격하게 다스리겠다”고 말하면, 회사는 자율적인 협상 타결보다는 노조를 파업으로 내모는 길로 나갈 수밖에 없다. 노사 문제에 무리하게 개입해 문제를 꼬이게 한 건 이 대통령 자신이다.
더구나 타협이 이뤄지지 않아 노조가 파업을 하더라도, 그게 꼭 불법은 아니다. 2006년 새로 도입한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보면, 필수공익 사업장에서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최소한의 업무 범위를 유지하면 불법이 아니다. 노동부 관계자들조차 “파업을 하더라도 노조는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정확히 알고 지켜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가정법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불법행동’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노조를 법으로 단죄하겠다고 말하는 게 과연 온당한 태도인가.
여기엔 ‘모든 파업은 불법’이라는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이 배어 있다고 본다. 계층과 부문별 갈등을 다독이면서 전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아니라, 기업 이익을 위해선 노동자의 합법적 권리도 무시할 수 있다고 보는 1970년대식 건설사 대표의 모습만 보인다. 대통령이 중심을 잃고 특정 계층·특정 집단에 치우진 행동만 한다면, 다수 국민은 누굴 믿고 이 어려운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생각을 할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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