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20 20:04
수정 : 2008.11.20 20:04
사설
금융시장 혼란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주가가 내리고 환율이 오르는 상황 악화의 원인은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한 탓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 구조조정이 지연돼 불확실성이 커지고 부실 증가 우려 또한 높아지는 데 있다. 환부를 제때 도려내지 않으면 감염부위가 확산돼 우리 경제 전반이 중병에 걸릴 수 있다. 그러한 실망감이 시장 지표에 반영된 듯하다.
금융당국과 채권은행은 부실 정도가 높은 건설·조선 업종을 시작으로 살릴 기업은 살리고 한계기업은 퇴출시키는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는 은행이 나서서 민간 자율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은행에 공을 떠넘기고 있다. 그렇지만, 은행 스스로 제 코가 석 자인데다 구조조정 파장을 감당하기 버거운 처지여서 눈치만 보고 나서지 않는 것이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칼날을 어떻게든 피하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며 지원은 받아 챙기려는 것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해당 기업의 생사가 걸렸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금융당국이 은행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은행을 압박하고 나섰지만 엄포 이상의 효과가 없는 것이다. 말만 무성하고 실제로 되는 일 없이 시간을 끌다간 정말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은행과 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며, 정부는 분명한 원칙과 계획을 갖고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한다. 시중에 돈을 넉넉하게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것도 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우량기업의 흑자도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이 요구된다. 그동안 지나친 낙관론에 기대어 부실을 키운 은행과 기업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시장의 실패는 정부가 나서서 치유해야 한다. 지금 같은 비상한 상황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면피주의, 보신주의다. 금융당국이 뒤에서 바람만 잡고 책임은 은행에 떠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과거 일부 정책 당국자들이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진 이후로 공무원들이 소극적 분위기가 되었다니, 소신있게 일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설정해 줄 필요가 있다.
구조조정의 성패는 공정성과 투명성에 달렸다. 대상 기업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원칙과 기준을 밝혀야 한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예전에 쓰던 ‘낫과 망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는데,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꺼내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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