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21 19:26
수정 : 2008.11.21 19:26
사설
국회에서 쌀 직불금 국정조사를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단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질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부당 수령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자료인 직불금 수령자의 직업·소득에 관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탓이다. 이 공단 이사장은 한나라당 출신인 정형근 전 의원이다.
정 이사장이 내세운 자료 제출 거부 명분은 개인정보 보호다. 건보공단의 개인정보 수집 목적은 쌀 직불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개인정보 보호에 소홀해 국민 신뢰를 잃으면 건강보험 제도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논리다. 얼른 들으면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런 논리가 대의기관인 국회 국정조사를 막을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정부기관들이 그런 식으로 개인 프라이버시를 앞세워 자료 제출을 거부하기 시작하면, 정부 업무의 잘못과 비리를 파헤치는 건 극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번 국정조사는, 농민에게 돌아갈 돈을 고위공직자 등이 가로챈 사실이 드러나자 그 실태를 정확히 밝히라는 국민적 요구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국민 신뢰 운운하며 건보공단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건 명분이 없다. 더구나 국회에 자료를 제출한다고 해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건 아니다. 물론 국회는 건보공단을 비롯해 정부 기관으로부터 넘어온 자료들에서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 책임은 전적으로 국회 특위 위원들이 져야지, 정부기관이 유출 위험성을 이유로 아예 자료를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건 월권이고 잘못된 행동이다. 건보공단의 자료제출 거부에서, 국민이 느끼는 건 개인정보의 유출 위험성보다는 오히려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정부기관의 오만함이다.
현행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은, 서류 제출을 요구받은 기관은 국가기밀이 아닌 이상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형근 이사장은 명백하게 법을 무시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언제까지 그의 고집에 끌려다닐 셈인가. 계속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법에 따라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한나라당도 자기 당 출신이라고 정 이사장을 감싸선 안 된다. 동료애보다는, 국민의 진상규명 요구와 국회 권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 이사장은 지금이라도 당장 국정조사 활동에 협조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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