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21 19:28
수정 : 2008.11.21 19:28
사설
국가인권위원회가 추천한 ‘대한민국 인권상’ 훈장 수상 후보자를 행정안전부가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인권 향상에 노력해 온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인권상의 올해 후보에는 이정이 부산 민주화실천 가족운동협의회 및 부산인권센터 공동대표가 추천된 바 있다. 아직 공식적인 견해를 내놓지는 않았지만, 행안부는 관계자의 입을 통해 “이씨의 자격을 비판하는 언론보도와 성명이 잇따르는 등 검증 과정에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황당하고도 한심한 결정이다. 먼저, 권위 있고 독립적인 국가기구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친 다음에 단수로 올린 인권상 후보자를 정부가 무슨 근거로 거부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인권상 후보 추천은 인권위가 밀실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다.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천거를 받는다. 이씨의 경우 지난해부터 한나라당 소속인 허남식 부산시장을 비롯해 설동근 부산교육감, 김인세 부산대 총장, 송기인 신부 등 부산지역 유력인사 30여명이 공동으로 추천서를 인권위에 냈다. 부산 지역사회 전체가 이씨의 공을 인정한 셈이다.
정부는 이씨를 배제한 이유로 ‘언론보도와 성명’을 들고 있다. <문화일보>와 <동아일보> 등 일부 보수 신문과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의 문제 제기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들은 이씨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벌인 것 등을 들어 ‘친북반미 인사에게 웬 인권상이냐’고 시비를 걸었다. 이씨가 가입한 민가협의 여러 사회연대 활동도 꼬투리를 잡았다. 전형적인 색깔공세다. 문제는 일부 보수인사들의 이러한 극우적인 시각과 주장을 정부가 거르지 않은 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이들의 하수인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씨는 1980년대 말부터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을 뿐 아니라 장애인과 노숙인 수용시설, 교도소와 구치소 등 인권 사각지대를 구석구석 발로 찾아다니며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의 이런 활동으로 부산 지역에서는 ‘인권의 대모’로 불린다고 한다. 최근에는 6·15 공동선언 실천 남쪽위 부산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평양 항생제 공장 건립 등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사업도 벌이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인권상을 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에게 줘야 한다는 말인가. 정부는 당장 인권위와 이씨에게 사과하고, 원래대로 국무회의에 후보로 올리기 바란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