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25 21:13
수정 : 2008.11.25 21:13
사설
이명박 대통령은 그제 “북한의 자세를 우리가 고쳐놓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 가자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간 정부가 북한을 무시하고 자극하는 태도를 보인 것과는 정면으로 어긋나는 말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관계’라는 지향점 자체는 타당하다.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지금, 그런 관계를 어떻게 꾸릴지 정부의 뼈저린 반성이 필요하다.
북쪽이 남북 사이 불신에 일정한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교류·협력의 최대 성과물인 개성공단까지 대남 압박 수단으로 삼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책임을 남쪽에 떠넘기는 것도 잘못이다. 남쪽 정부 고위인사들에 대해 원색적 비방을 계속하는 것 역시 신뢰를 해치는 행태다.
하지만 불신의 많은 부분은 이명박 정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우선 남북 정상이 서명한 10·4 및 6·15 선언 이행을 뒷전에 제쳐놨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자 ‘북한 급변사태’를 직간접으로 부각시켰다. 핵문제와 남북관계 연계, 인도적 지원 기피,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공동제안, 선제타격 발언, 대북 전단살포 방치 등도 불신 심화에 기여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이런 움직임에 항의하는 북쪽에 귀를 닫아걸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를 ‘의연하고 원칙적인 대응’이라고 강변했다.
이런 상황은 남북관계 파국을 막고 신뢰를 높일 주된 책임이 이명박 정부에 있음을 보여준다. 북쪽에 책임을 떠넘기기에 앞서 정부가 먼저 태도를 바꾸고 북쪽 호응을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량급 특사 파견 등을 통해 대화 실마리를 푸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개성공단이 고사할 지경까지 왔는데도 ‘사태를 예의 주시하겠다’며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하거나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미숙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한-미 공조가 잘되면 남북관계는 별문제가 안 될 거라는 환상에서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개성공단 가동 중단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남북관계는 전면적 파국을 맞으면서 심각한 파장이 한반도를 덮칠 것이다. 그때 가서 남북관계를 풀려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어려워진다. 해법은 빨리 대북정책을 바꾸는 것뿐이다. 정부, 특히 이 대통령의 결단이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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