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01 20:36
수정 : 2008.12.01 20:36
사설
정부·여당이 과거사위원회의 통폐합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정부와 협의를 거쳐 지난달 국회에 제출된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의 과거사위 통폐합법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은 18개 과거사위 가운데 시한이 있는 위원회 넷은 그대로 두되 나머지는 모두 진실화해위로 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기한이 가장 많이 남은 진실화해위 역시 2010년 4월이 활동 종료일이어서 이대로라면 내후년 상반기에는 모든 과거사위원회가 문을 닫게 된다. 진실화해위를 2년 연장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정부의 태도로 볼 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권이 과거사위원회 통폐합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의 중복을 막고 예산 낭비를 줄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위 통폐합은 효율성 면에서 전혀 설득력이 없다. 각 위원회의 업무 성격이 다른데다 현재 각 위원회는 자신의 고유업무 처리에도 급급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진실화해위는 1만900여 건을 접수해 현재까지 28%인 3100여 건만 처리했으며, 군 의문사위는 600건 중 252건(42%)의 조사를 마쳤다. 올 연말 군 의문사위 활동이 끝나면 나머지 300여 건은 진실화해위로 넘어가게 된다. 이 경우 고유 업무도 산처럼 밀려 있는 진실화해위가 전문성이 없는 군 의문사 미제 사건을 1년 남짓 동안에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죽하면 행정안전부조차 과거사위의 통폐합 효과가 크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겠는가.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을 효율성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발상부터가 천박하다. 국가 폭력의 진상을 뒤늦게나마 규명하자는 것은 단지 희생된 개인들을 위로하고 보상하려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사회적 화해를 이루자는 데 뜻이 있다. 그러자면 먼저 피해자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들이 결연히 반대하는 통폐합은 설령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의도한 바를 이룰 수 없다.
더구나 아직은 과거사법 정리가 아니라 과거사 정리에 매진할 때다. 시한이 남은 위원회의 일 처리가 아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빛 보기를 기다리는 사건들이 부지기수다. 억울한 사연을 덮어둔 채 미래로 나아갈 수는 없다. 정부·여당은 발상이나 현실성에서 문제가 많은 과거사위 통폐합법을 철회하기 바란다. 보상 업무 통합 등 일부 기능 조정이 필요하다면 야당과 과거사위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 공감대부터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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