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07 19:37
수정 : 2008.12.07 19:37
사설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주말, 주요 입법안에 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성향을 담은 문건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읽다가 언론에 들켰다. 이 문건엔 이른바 ‘엠비(MB) 개혁입법’에 저항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기재돼 있었다. 이상득 의원은 이 문건을 놓고 안경률 당 사무총장과 밀담을 나눴다고 한다. 흡사 내부의 적을 찾아내 분쇄하는 방첩대의 그림자가 이상득 의원의 모습에 아른거린다.
문건의 출처에 대해선 여러 소문이 떠돈다. 이상득 의원 쪽은 “당에서 만든 게 아니며, 시중에 돌아다니는 문건을 우연히 받아서 읽어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한나라당 안에도 별로 없다. 이 의원이 문건의 작성을 직접 지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가 의원 성향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 누군가 그런 문건을 만들어 올렸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 문건은 홍준표 원내대표를 산업은행 민영화에 ‘소극적’이라고 낙인찍었다. 원내 대책을 총괄하는 원내대표까지 감시와 분류의 대상이 되니, 한나라당엔 공식 조직보다 더 무서운 비공식 ‘형님 조직’이 움직인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지난주에 전직 대통령의 형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동생이 대통령이 되니, 시골서 농사만 짓던 촌부에게도 온갖 이권과 청탁이 몰려드는 게 세상의 흐름이다. 혐의 내용이 아주 고약스럽긴 하지만, 노건평씨 사례는 그래도 노씨 개인이 몇몇 기업과 얽힌 비리라 할 수 있다.
이상득 의원은 노건평씨와는 다르다. 그는 정치를 동생인 이명박 대통령보다도 먼저 시작한, 6선의 한나라당 최다선 의원이다. 역대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줄줄이 국정 개입으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지만, 영향력으로만 본다면 그 누구도 지금의 이상득 의원을 넘어설 이가 없다. 그런 그가 정권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국정 전반에 그의 힘이 뻗치지 않는 데가 없고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사람이 없게 된다.
이 의원은 새 정부 출범 뒤 정치에서 손을 떼라는 당내 의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코 국회의원 배지를 다시 달았다. 이미 권력의 중심부에 서 있는 그에게, 이 정권의 남은 기간 조용히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전직 대통령 형의 구속이 이 정권엔 아무런 교훈이 되질 못하는 모양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