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12 19:44
수정 : 2008.12.12 19:44
사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 수석대표 회담이 북한 핵 검증의정서 채택에 실패하고 그제 나흘 일정을 마쳤다. 미국의 정권이 바뀌는 과도기적 상황임을 고려하더라도 실망스럽다. 당분간 회담 교착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북한에 있다. 북한은 핵심 쟁점인 핵시료 채취에 대해,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핵능력을 노출하는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이는 ‘주권적 및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런 북쪽 태도는 억지스럽다. 검증의 주된 목적이 바로 핵능력 파악에 있으며, 진전된 검증 방안 합의를 통해 신뢰가 크게 증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처럼 북한이 핵능력과 관련해 뭔가 계속 숨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한 회담 진전에 필수적인 신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한은 내년 초 출범할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의 협상에 대비해 검증방안 문제를 카드로 남겨두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북한의 기대대로, 포괄적 협상과 고위급 직접대화를 공언해 온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 북-미 관계의 양상이 바뀔 가능성이 적잖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시료 채취에 대한 합의 없이 검증 문제가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북한이 오바마 행정부와 한 차원 높은 대화를 하기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검증의정서 채택에 호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나라가 보인 모습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 대표단은 이전과 같은 ‘창조적 중재자’ 구실을 포기하고 대북 압박에 치중해 회담 분위기를 경색시켰다. 김숙 수석대표가 검증의정서 채택과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을 연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핵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이어야 할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방관자 또는 방해자가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참가국들은 이제 회담의 새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우선 핵 불능화와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을 차질 없이 진행시켜 2단계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 일부에서 거론하는 대북 지원 재검토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면서 핵 검증을 포함해 다음 핵 폐기 단계 과제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강경기조 대북정책을 바꿔 남북관계와 6자 회담 진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그 가운데 하나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