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14 22:09
수정 : 2008.12.14 22:09
사설
국가인권위원회를 겨냥한 정부 행태가 도를 넘었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인권위 인력을 지금보다 49% 줄이는 조직개편 검토안을 인권위에 통보한 것은 이 기구를 무력화하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이 안대로 된다면 지역사무소를 포함한 인권위 조직이 대폭 축소돼, 법에 정해진 인권위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다.
정부는 인권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자 끈질기게 시도해 왔다. 인수위 때는 독립기구인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바꾸려다 나라 안팎의 반발로 실패했고, 이후 친정부적이고 반인권적인 사람을 인권위 위원으로 들여보내 정부 부서처럼 길들이려 했다. 지난 5~6월에는 감사원이 나서 이례적인 감사를 벌였으며, 정부·여당 인사들은 틈나는 대로 인권위 결정에 시비를 걸었다. 지난달에는 이 기구가 ‘대한민국 인권상’ 훈장 추천자로 선정한 인물을 행정안전부가 일방적으로 심사 대상에서 뺐다.
이명박 정부가 인권위를 껄끄럽게 여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권위는 성격상 국민의 정치·사회적 자유권 확대와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보장 등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반면, 정부는 강압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기득권층 중심 질서를 강화하려 한다. 올해 들어 더 나빠진 비정규직 및 이주 노동자 인권, 비밀보호법 개정과 사이버 모욕죄 신설 등 표현의 자유 제약, 촛불집회 참가자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집시법 개악 시도 등이 구체적 사례다. 곧, 문제는 인권위가 아니라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에 있다.
인권위 진정 사건의 80%가 공권력에 의한 자유권 침해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인권위의 주된 임무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를 바로잡는 것이다. 인권위법은 이를 위해 “인권위는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3조 2항)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인권위 무력화 시도는 이 법 정신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우리나라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부의장국이자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여전히 인권 후진국이긴 하지만, 민주화 이후 활발한 인권 개선 활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이런 노력을 총체적으로 담보하는 유일한 국가기구가 인권위다. 그런데 지금 인권위 인력은 208명, 예산은 서울시내 큰 경찰서 하나와 비슷한 정도다. 정부가 ‘반인권’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인권위 활동이 더 확대·심화되도록 뒷받침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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