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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 ‘호화 청사’, 주민이 막자 |
지방자치단체들의 청사가 갈수록 호화판이 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용인시 새 청사의 경우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본관의 규모와 맞먹는다고 하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치단체가 엄청난 부채에 허덕이는 걸 생각하면,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정신 상태가 정상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필요한 규모를 초과해 청사를 짓지 못하도록 규정한 현행 법과 조례의 허점을 이용해 호화 청사 경쟁에 나서는 자치단체도 있다고 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른 데는 상위 감독 부처인 행정자치부의 미지근한 대처가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행자부가 자치단체의 청사짓기 경쟁에 제동을 걸기 위해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한 게 2001년 9월이었으니,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한 것은 그 이전이었을 것이다. 행자부는 시행령 개정안에서 지방청사를 지을 때 건축비가 50억원을 넘으면 전문기관의 타당성 조사를 받도록 의무화했다는데, 이 절차가 참으로 물러터졌다. 자치단체들이 이 절차에 대해 타당성을 따져보기보다 타당성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사업을 추진한다는 얘기이고 보면, 행자부의 안이한 형식적 행정에 화가 치민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처음 시행된 직후, 전국에서 여러 자치단체장이 호화 관저를 폐쇄하는 대신 전세 아파트에 기거하는 파격적 행보를 보였다. 이때 유권자이자 주민은 신선한 충격 속에서 지방자치제의 효과를 체감하기도 했다. 지방자치제 시행 10년째에 접어들고 주민들의 의식도 엄청난 성장을 했는데도 ‘빚더미 속의 호화 청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퇴행이 아닐 수 없다. 행자부가 실효성 있는 규제 대책을 세우는 것도 급하지만 주민 스스로 호화 청사 건립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관련 조례 제정에 나서야 한다. 그게 지방자치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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