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15 19:54
수정 : 2008.12.15 19:54
사설
한나라당이 내년 예산안 처리를 강행한 데 이어, 논란이 많은 법안도 단독으로 통과시킬 태세다. 그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법안은 전쟁모드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더니, 어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에게 “현재 국회에 제출한 ‘개혁법안’들은 대선 때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한,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법안들이다. 국회에서 신속히 통과시켜 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논란 법안 처리를 독려한 셈이다.
우선, ‘개혁법안’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치 않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분열 법안’, ‘논란 법안’이라 부르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 ‘개혁’이란 용어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려면, 법안 추진의 정당성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문제 법안들에 대해선 숱한 논란과 비판만 있을 뿐, 왜 지금 시점에서 전쟁하듯이 입법을 강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좀더 솔직한 속내는 박희태 대표의 말에서 확인된다. 박 대표는 이념법안과 경제법안을 구분하자는 당내 주장에 대해 “다 법질서를 세우자는 법이지 무슨 이념 입법이냐, 다 개혁입법이다”라고 말했다. 이왕 욕먹을 것 이번에 한꺼번에 다 통과시키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임을 내세우며, 대선 때 국민 다수가 지지했으니 입법의 정당성은 확보한 셈이라고 말했다. 논리의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다. 대선 승리를 모든 정책공약에 대한 승인으로 간주한다면, 국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대선 이후 경제상황이 급변했는데도, 대선 공약이라고 무작정 밀어붙이는 게 타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논리라면, 대선 기간에 이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했던 ‘747 공약’(연평균 7%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 역시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이에 대해선 이 대통령 스스로 “세계 경제변동에 따라 (경제성장률도) 탄력대응을 해야 한다”고 이미 말을 바꿨다.
지금은 대선 공약이니 뭐니 따질 때가 아니다. 국민의 힘을 하나로 끌어모아 전례 없는 경제위기 극복에 매진하는 게 최우선이다. 물론 경제위기의 해법을 놓고 여야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이게 몇몇 법안에 대한 찬성-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 법안들은 당장 통과시키려 하기보다는, 좀더 논쟁하고 타협하면서 처리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법을 집행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추진력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경제위기 극복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념 법안’들은 다음으로 논의를 미뤄야 한다. 그런 법안은 국민 분열만 심화할 뿐이다. 지금은 국민을 통합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할 입법에 더 힘을 쏟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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