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1.05 20:59 수정 : 2009.01.05 21:36

사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검인정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을 느닷없이 바꿔, 출판사들에 보냈다고 한다. 정부 직권으로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를 누더기로 만들더니, 이번엔 집필이 끝났거나 집필 중인 도덕 교과서마저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다시 쓰도록 한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는 정부의 집필기준에 따라야 채택되는 만큼 출판사로선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야 한다.

변경된 집필기준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변경 절차와 배경이다. 교육부는 국정이던 도덕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2007년 8월 집필기준을 마련했다. 역사는 물론 윤리나 경제·사회 영역의 경우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해석 평가가 존재하는 만큼, 이런 요소들을 반영하는 과정은 집필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 때문에 당시 교육부는 집필기준을 마련하기까지 오랜 시간 교육 현장과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이번엔 어떤 의견 수렴 과정도 없었다. ‘이명박식 속도전’을 교과서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물론 이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집중적으로 변경된 집필기준은 통일교육 영역이었는데,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5월 통일교육 지침서를 만들어 1만여 초중고교에 배포한 바 있다. 그러나 그건 국정 체제에서 교사 참고용으로 배포됐을 뿐, 학계나 교육 현장,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과는 무관하다. 지침에 포함된 것은 오로지 정파적 시각으로 무장한 뉴라이트 계열의 의견뿐이다.

변경된 내용도 국민 정서나 시대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통일교육을 미래지향의 평화교육에서 냉전회귀의 대결교육으로 돌려놓은 게 고작이다. 북 체제와 변화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관점 대신, 안보 위협 요인으로서 북한, 실패한 체제로서의 북한 등 대결적 관점을 요구한 것이다. 학생에게 식민지 근대화론, 독재체제 불가피론, 냉전적 체제 대결론을 주입하려 했던 근현대사 교과서 왜곡과 같은 맥락이다.

검인정 제도는 같은 사안이라도 다양한 시각·해석·평가를 제시하고 학생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도록 해 창의적 학습력을 키우려는 제도다. 이렇게 정치권력의 목적과 이해관계에 따른 시각과 해석을 강제하고 학생의 사고와 판단을 조작하려 하면서, 검인정 교과서를 표방하는 것은 사실상 사기다. 사기꾼 소리를 듣느니, 시대착오적 독재자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국정 체제로 되돌리는 게 차라리 떳떳할지 모른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