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07 20:14
수정 : 2009.01.07 20:14
사설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널린 사람 몸 조각과 건물 잔해뿐이다. 의료 지원을 하는 한 서방 의사는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작업처럼 부상당한 사람들의 팔다리를 끊임없이 절단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6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숨지고 3천명 가까이 다쳤다. 어린이 사망자가 200명을 훨씬 넘고 부상자는 대부분 민간인이다. 그제는 난민 수백명이 피신해 있는 유엔 학교가 폭탄 공격을 당해 40명 넘게 숨졌다. 유엔이 사전에 좌표를 알려주고 공격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곳이다.
이스라엘이 지난 3일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한 가자지구의 모습이다. 지구촌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지는 무차별 학살의 현장이다. 이스라엘군은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폭탄과 총알을 퍼붓는다. 유엔 시설까지 공격받는 판에, 서울 반 정도 땅에 모여 사는 150만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은 피하려 해도 피할 곳이 없다. 국제사회 분노가 갈수록 커지지만 이스라엘에겐 쇠귀에 경 읽기다.
이런 학살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자신을 공격하는 하마스 조직원이 민간인 사이에 숨어 있어서 공격했다는 뻔한 변명만 되풀이한다. 차라리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를 다시 점령해 공포정치를 펼치겠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하다. 얼마나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더 나와야 침공이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승리라며 웃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쌓이는 증오는 두고두고 이스라엘을 겨냥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분명히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결정을 했다”고 두둔한다. 유엔의 휴전 촉구 결의안도 미국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최대 원조국으로, 학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하지만 미국은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공범자 같은 모습을 보인다. 학살이 계속되는 데는 미국 탓도 크다.
취임을 불과 10여일 남겨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소극적인 모습은 실망스럽다. 그는 유엔 학교가 폭격을 당한 뒤에야 처음으로 “깊이 우려한다”고 입을 뗐다. 비겁한 태도다. 진정으로 중동 평화를 바란다면 즉각 이스라엘의 공격을 중단시키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이스라엘의 강경노선을 제어하지 못하면 중동 평화는 그만큼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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