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08 20:43
수정 : 2009.01.08 20:43
사설
민주노총 산하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어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자고 제안했다.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으니, 정부와 기업도 노동자를 해고하지 말고 기본생활 보장에 적극 나서란 뜻이다. 금속노조는 임금 동결이나 감축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명하진 않았지만, 잔업·특근수당 비중이 높은 우리 임금구조에선 노동시간 단축이 곧 임금의 실질적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어려운 시기에 노동계가 먼저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통분담에 나서겠다고 한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 우선해고 금지를 요구한 것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노동자로서 함께 나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으리란 점에서 뜻깊다.
일자리 나누기란 단순히 해고 위험에 처한 노동자의 생존권 차원에서만 필요한 건 아니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긴요하다. 세계적 불황으로 수출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선 내수를 확대해야 경제가 산다. 당장 어렵다고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이 대량 해고에 나서면 내수는 더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총고용을 유지해서 소비를 살리는 건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금속노조의 제안을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일자리 나누기를 제도화하기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서로 신뢰가 중요하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노동계와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전향적이고 가시적인 조처를 취하는 게 매우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의 이석행 위원장을 구속했다. 노동부는 최저임금 기준을 오히려 하향 조정하고, 해고요건 등을 완화하는 쪽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고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렇게 한 손엔 칼을 들고 노동자의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통분담을 하자고 말하면 그걸 믿고 따를 사람은 없다. 일자리 나누기의 깃발을 노조가 먼저 들었지만, 그걸 성공시킬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명박 정부는 먼저 반노동자적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노·사·정이 함께 주요 현안을 논의할 여건을 마련하는 데 시급히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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