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08 20:45
수정 : 2009.01.08 20:45
사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첫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어제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렸다.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 대통령이 비상경제정부 구상을 내놓자 청와대는 비상경제상황실을 워룸(작전실)체제로 운영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매주 열기로 했다.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준전시 상황에 걸맞게 그때그때 맞춤형 정책을 내놓고 속도전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정책의 체감도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이 관계 기관장들을 한 데 불러 즉각 시정을 지시하는 초고속 의사결정 구조인 셈이다.
경제가 안팎에서 내려앉는 상황이어서 정부가 비상한 대응체계를 꾸리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독려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정책을 한쪽 면만 보고 결정하거나 가시적 성과에 연연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과거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의 갈등을 예로 들며 지금 같은 위기에서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했는데,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성장에 집착하는 정부와 물가안정을 최우선시하는 한국은행의 견해는 다를 수 있으며, 무조건 따르라는 식은 나중에 더 큰 후유증을 낳을 우려가 있다.
속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경기침체로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서민과 빈곤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우리 앞의 가장 비상한 과제는 고통분담과 사회적 대타협으로 실업을 최소화하고, 취약계층 보호대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야만 내수기반도 살아나고 지나친 대외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간의 균형과 상생을 꾀하고, 미래 성장 동력에 투자를 해야 한다. 부자 감세와 규제완화, 삽질경제로 역주행하면서 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워룸이 아니라 쇼룸이라는 비아냥을 듣기 쉽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사회통합과 신뢰회복이 이뤄져야 한다. 위기관리 능력에 낙제점을 받은 경제팀을 교체하는 게 대책의 첫 번째 순서가 돼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위기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대지만, 바로 위기이기에 개각이 필요하며 국민의 신뢰를 가장 큰 잣대로 삼아야 한다. 비상경제대책회의가 국민의 소리에 귀를 열고 궤도를 수정하는 구실을 하지 않는다면, 소리만 요란할 뿐 청와대 서별관회의보다 나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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