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11 21:28
수정 : 2009.01.11 21:28
사설
각본이 잘 짜인 한편의 쇼를 보는 듯하다. 한나라당과 국회사무처가 방송법 등 문제 법안의 처리를 온몸으로 막은 야당 의원들을 폭력과 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검찰과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하겠다며 잇달아 소환을 통보한다. 네 야당 의원에 대한 의원직 사퇴 결의안 제출에 이어 국회폭력방지법도 만들겠다고 한다. 친여 성향의 뉴라이트 보수단체는 이른바 ‘폭력 의원’을 소환하는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여당과 수사기관, 국회사무처, 보수단체의 손발이 척척 맞아들어 간다.
그러나 여권의 ‘반폭력’ 움직임은 기본 인식이나 대응 방식 등에서 문제가 많다. 먼저, 여야의 이번 대치 과정에서 있었던 야당 의원의 언행을 ‘폭력’이라는 형법적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야당 의원들이 해머를 들거나 책상 위에 올라가서 발을 구른 행위는 결코 그 자체로 독립돼 일어난 일이 아니다. 여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을 저지하고, 국회사무처의 월권적 처사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정치활동의 하나였다. 그렇다고 모든 게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지만, 야당 의원들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민간인들 사이 주먹다짐과는 차원이 다르다.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따지더라도 해머 들고 발길질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다수의 힘으로 소수 야당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폭력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주요 법안 등을 충분한 토론 없이 다수당 맘대로 처리하려는 제도적인 폭력이 저항권 차원에서 이뤄지는 야당 의원들의 물리적인 힘의 사용보다 더 해롭다.
정치 영역에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것 역시 매우 부적절하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검찰 등이 의회에서의 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질식되고 만다. 공안통치를 노리는 게 아니라면 여당과 국회사무처는 당장 야당 의원에 대한 고발을 취소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도 여당의 정략적 주문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국회의 품격을 높이려면 다수당의 횡포를 막고,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 등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민주적인 의회 운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 조처 없이 폭력 처벌만 외치는 것은 2월 국회를 앞두고 야당의 반대를 제압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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