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12 20:52
수정 : 2009.01.12 20:52
사설
이명박 대통령의 새해 첫 라디오 연설은 강추위만큼이나 싸늘하고 호전적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엠비(MB) 법안’을 둘러싼 충돌 양상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국제적인 경멸의 대상이 되다니 대통령으로서 정말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의실 문을 부수는 해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때리고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는 것 같아 아팠다. 이라고 강조했다. 국회를 지켜보면서 정말 부끄럽고 가슴이 아팠던 건 국민인데, 분란의 한쪽 당사자이자 어쩌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이 이렇게 말을 하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생각이 든다.
국회가 해머까지 등장할 정도로 극심한 파행을 겪은 근본 이유는 방송법 등 쟁점 법안을 어떻게든 밀어붙이려는 청와대의 과욕 때문이었다. 청와대 의중을 읽은 한나라당 안 ‘친이명박’계 의원들이 무리하게 법안들을 강행처리 하려다 여론과 야당, 당내 온건파의 반발을 자초한 것이 최근 국회 사태의 본질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도를 넘은 폭력적 행태가 있긴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고쳐나가면 된다. 민주주의 숨통을 짓누른 주범은 해머가 아니라, 국회는 청와대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사고 그 자체였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청와대, 행정부의 일하는 방식과 국회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1주일 만에 법을 통과시키자는 것은 국회의원과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청와대가 하는 일을 군소리 없이 밀어줘야 하고, 국민도 한마음으로 적극 협조해야 나라가,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은 1960, 70년대 개발독재 시절의 위정자 생각에 다름없다. 그 무렵 건설사 사장을 했던 이 대통령에겐 토론과 타협은 지극히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문제는 그런 식의 사고가 잘못됐다는 점뿐 아니라, 이제 현실 정치에서 작동하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국민과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무조건 밀어붙여라’는 식의 청와대 명령은 쉽게 통하질 않는다. 이 대통령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국회를 맹비난한 덴 여당 내부를 강하게 옥죄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이지만, 그럴수록 청와대 권위는 초라해지고 여론의 역풍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방향이 잘못됐으면 먼저 방향을 바로잡는 게 순서다.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목소리만 높인다고 일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청와대는 라디오 국정연설을 시작하면서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의제를 피하고,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정을 설명하는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제 연설 내용을 보면, 정치적 논란을 증폭하고 분열과 싸움을 부추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정’과 ‘정치’를 무 자르듯 가를 순 없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라디오 연설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통령이 야당과 싸우고, 국회의장이나 여당 내 온건파와 싸우는 데 굳이 공중파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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