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13 20:36
수정 : 2009.01.14 17:51
사설
그제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맞춰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아리랑 3호 발사 용역업체로 확정됐다. 아리랑 3호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개발해 2011년 쏘아 올릴 다목적 실용위성이다. 우리가 일본에 위성 발사를 맡긴 것도, 일본이 외국 위성 발사를 수주한 것도 처음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제안해 추구해 온 한-일 신시대의 한 모델인 셈이다.
항우연 쪽은 지난 10월 말 미쓰비시 중공업을 우선협상 대상 업체로 정하면서 “경쟁업체에 비해 절반 수준의 입찰가격을 제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분야에서 미국·러시아·유럽보다 후발 업체인 일본 쪽의 가격 경쟁력을 실용적 관점에서 높이 평가했다는 뜻이다. 이런 태도는 과거사·독도·교과서 등 민감한 주제는 아예 정상회담 의제에서 뺀 이 대통령의 대일본 접근 방식과 맥락을 같이한다. 실제로 미쓰비시 중공업이 위성 발사 업체로 결정되는 데는 이 대통령의 뜻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한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뒷받침해 온 일본 최대 군수업체다. 1944년부터는 300여명의 10대 한반도 소녀들이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나고야의 이 회사 항공제작소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피해자들은 이 회사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1998년 소송을 냈으나 10년 만인 지난해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기각됐다. 법적 투쟁과 병행해 양심적 일본인들은 2007년 7월부터 이 회사 도쿄 본사 앞에서 금요시위를 계속해 왔다.
이명박 정부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고통을 덜고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에 한 번도 동참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 경협만을 강조하는 것은 많은 일제 피해자가 제1 전범기업으로 꼽는 이 회사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과 같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경협에 앞서 과거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게 먼저다. “과거 회사와 지금 회사는 다르다”는 등의 변명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얄팍한 술수일 뿐이다.
몰역사적 경제관계를 강화한다고 해서 한-일 신시대가 오지는 않는다. 일본내 제국주의 세력은 미쓰비시 중공업의 이번 ‘승리’를 보며 웃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문을 발표했다가 경질된 다모가미 도시오 전직 자위대 항공막료장이 계속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현실은 과거사가 바로 지금의 문제임을 잘 보여준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