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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병역기피용 국적포기 |
병역의무를 마쳐야 국적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한 새 국적법 시행을 앞두고 한국인임을 포기하려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만 18살 이전에 국적 포기 신고를 하면 병역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는 현행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이다. 법안이 이달 초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 하루 1~2건에 그치던 신고건수가 10일 하루에만 서울에서 140여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폭발적인 수치다. 몇 해 전에는 전문 브로커가 낀 원정출산이 기승을 부려 국제적인 망신을 사더니 이제는 국방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 나라까지 버리고 있는 것이다.
신청자의 나이와 성별, 보호자인 부모의 직업 등을 들여다보면 심각성은 더하다. 대부분 13~17살 남성인 이들의 부모는 상사의 국외 주재원이나 교수, 연구원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남부럽지 않게 생활할 수 있는 부와 명예를 갖고 있는 이들이다. 자식을 길러 꼬박꼬박 군대에 보내는 보통의 시민들이 이들의 행태를 보고 느끼는 분노와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세계화 시대에 누구에게나 국적을 선택할 권리는 있다. 원정출산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미국법이 허용하는 속지주의에 따라 시민권을 취득했다면 어느 나라의 국민으로 살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부모로서 자식의 앞날을 챙길 의무도 있다. 하지만 법을 피해가면서 병역의무를 지키지 않으려고 자식의 국적 포기에 나서는 것은 과잉 애정이다. 국적을 포기한 자녀가 한국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삶을 살아가며 겪게 될 정체성 혼란도 심각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국적 포기 신고를 선별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국적 선택권을 침해할 소지가 큰 만큼 바람직하지 않다. 당장 서둘러야 할 것은 지금과 같은 병역 기피성 국적 포기자가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새 국적법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일이다. 전근대적인 군대 문화를 개선해 병역 기피의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도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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