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21 19:13
수정 : 2009.01.21 19:13
사설
여섯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철거민들의 불법·폭력시위 때문이라는 주장 따위가 그것이다.
그제 정부 발표문은 경찰의 폭력적 과잉진압에 대한 반성보다는 ‘점거농성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더 많았다. 청와대도 애도와 유감을 표하기에 앞서 ‘과격시위’를 먼저 입에 올렸다. 참극의 당사자인 경찰까지 되레 철거민들의 ‘도심 테러’ 탓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극우성향 신문은 ‘외부 불순세력’이 문제라며 여론의 방향을 돌리려 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정부 사과와 책임자 문책 대신 ‘진상규명 먼저’를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모두 이번 참사의 본질을 흐리려는 ‘물타기’ 행태들이다.
이번 참사는, 경찰이 정상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없다. 경찰은 소방차나 구급차·매트리스 등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야간 진압작전을 강행했다. 진압 과정에서 추락한 한 철거민은 아무 구호 없이 한동안 방치되기도 했다. 경찰에게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도 있다. 그렇게 돼도 상관없다’라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옴직한 상황이다. 이런 게 바로 ‘과격’이고 ‘폭력’이다.
경찰의 진압작전은 합법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경찰은 군대와 함께 국가 물리력의 핵심이다. 압도적이고 배타적인 물리력을 지닌 경찰의 공권력 행사는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지 않아야 할 것은 물론, 적절한 범위를 지켜야 한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행사돼야 하며, 이를 남용해선 안 된다”는 ‘경찰력 최소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도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방어 위주의 경비 원칙을 준수할 것”을 경찰에 권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50여명의 철거민을 향해 테러진압을 주임무로 하는 경찰특공대 등 1600여명의 압도적인 물리력을 동원해 시가전 벌이듯 작전을 벌였다. 법에 정한 원칙을 어긴 셈이니, 테러가 따로 없다. 경찰의 물리력 행사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요건에도 어긋난다. 시너와 화염병을 던지는 따위 ‘도심 테러’가 있었다지만, 경찰은 정작 그로 말미암은 시민 피해는 제대로 대지 못했다. 용역업체의 폭력에 대항하려는 데서 비롯된 원시적 저항 수단을 강경진압의 핑계로 삼는 것은, 마치 돌팔매질을 이유로 미사일을 쏴대는 꼴과 같다. 시민과 경찰의 목숨을 담보로 한 작전을 펴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하는 건 너무나 민망한 변명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과격시위와 강경진압의 악순환이 아니라, 경찰의 폭력진압이다. 검찰 수사는 철거민들만 처벌하는 쪽이 아니라,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을 엄하게 묻는 것이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다치고 놀란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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