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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3 18:13 수정 : 2009.01.23 18:13

사설

청와대가 김석기 서울경찰청장(경찰청장 후보자)의 인책 여부 결정을 설 연휴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고 한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김석기 청장의 경찰청장 내정을 철회할지에 대해 “정확한 상황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데 변함이 없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규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상 규명이 오늘내일 사이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김 청장의 인책 문제는 설 연휴가 지난 뒤에나 결정날 것으로 보인다.

책임을 물으려면 먼저 진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논리는 일면 타당한 것 같지만, 김 청장 인책에 소극적인 건 단지 그런 형식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엔 경찰 진압 과정에서 철거민과 경찰 6명이 숨진 사건을 바라보는 현 정권의 비뚤어진 인식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가 터지자마자 ‘경찰 총수를 경질해야 한다’는 말부터 먼저 나와, 법질서 확립에 나섰던 전체 경찰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선진국치고 법질서가 없는 나라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경찰로서의 원칙을 지켜왔다. 개인적으로 설령 손해 보더라도 그건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법질서 확립’을 위해 똑같은 결정과 행동을 하겠다는 뜻이다. 경찰 특공대까지 투입한 무리한 진압작전에 대한 반성이나 후회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시민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사회질서를 세우면 그게 곧 선이라는 반인권적 발상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인식은 비단 김 청장한테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검찰은 철거민 5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경찰 진압작전을 ‘지극히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법원에 설명했다고 한다. 철거민 5명과 동료경찰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간 행동을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이 정부에서 ‘정당하지 못한 공무집행’이란 건 어떤 걸 말하는지 궁금하다. ‘법질서 확립’이란 구호만 내세우면 시민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유린하는 어떤 공권력 행사도 모두 합법성을 부여받는다는, 비뚤어진 국가 폭력의 독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법과 질서가 시민의 자유와 생명을 보호하는 데 활용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법과 질서의 확립을 위해 시민은 자유와 생명을 내놓아야 할 판이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만 탓할 수는 없다. 이런 인식의 뒤편엔 이명박 대통령의 강압적인 국정운영 방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김석기 청장에게 쉽게 책임을 묻지 못하는 건, 그가 이 대통령이 내세운 ‘법과 질서의 확립’이란 기조를 충실히 떠받들어 왔기 때문이다. 기존의 국정운영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기에, 경찰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책임을 철거민들에 떠넘기려 애쓰는 것이다. 경찰 책임자 문책이 핵심이 아니란 청와대 인식은 타당하다. 문제의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다. 이 대통령이 강압적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불행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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