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29 19:55
수정 : 2009.01.29 19:55
사설
경찰이 용산 참사와 관련한 여론조사에까지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경찰관들에게 인터넷 여론조사에 참여하라는 문자 메시지가 일제히 발송된 사실이 경기와 광주·경북 등 전국에서 확인됐다. 이 때문인지 ‘100분 토론’의 여론조사는 용산 참사의 원인에 대해 처음에는 ‘경찰의 과잉 진압’ 응답이 우세했다가 불과 몇 시간 만에 ‘불법과격 시위’라는 응답자가 3천명이나 늘어 결과가 엎치락뒤치락했다. 용산 참사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물은 <인터넷 한겨레>의 여론조사도 마찬가지였다. 조사를 시작한 지난 21일부터 나흘 동안은 ‘김석기 청장부터 파면해야’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설 연휴 때부터는 갑자기 ‘진상규명부터 이뤄져야’가 더 높아졌다.
또, 인천에서는 경찰의 강경진압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기고문이 지역신문 등에 일제히 발송됐다고 한다. 기고문은 반발을 우려해 행정발전위원과 보안협력위원 등 경찰과 관련이 있는 단체나 개인의 이름을 빌리는 형식을 취했다고 한다. 이런 행태가 비단 인천뿐이겠는가.
누구든 자기 주장을 정당하게 펼 수는 있다. 그러나 경찰의 여론조사 참여 독려는 단순한 자기 변호가 아니라 심각한 반칙이자 권한 남용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경찰의 행위에 대한 국민의 평가와 견해를 묻는 것이지, 경찰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경찰이 조직을 동원해 조사 결과를 뒤집으려고 했다. 이는 여론 조작이자 대국민 사기나 다름없다. 더구나 경찰은 무리한 공권력 행사로 국민 5명과 경찰관 1명을 숨지게 한 당사자 아닌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반성문을 써도 모자랄 판이다.
경찰의 한심한 행태는 여권의 경찰 감싸기에서 비롯됐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지도부는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판하고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는 여당 내부의 목소리를 누르기에 급급하다. 심지어 청와대 쪽에서는 경찰이 개입된 엉터리 여론조사를 근거로 김 내정자에 대한 임명 절차를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경찰의 여론 조작과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 정부·여당의 바람잡이로 국민의 귀와 눈을 속이는 시대는 지났다. 더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하루빨리 과잉진압 책임자를 처벌하고, 국정 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꾸기 바란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