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30 19:39
수정 : 2009.01.30 19:39
사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계속 나빠진 남북 관계가 새로운 고비를 맞고 있다. 북한이 어제 발표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은 이전 조처들과 차원을 달리한다. 남북 사이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이제까지 합의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조항의 전면 무효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문맥 그대로 해석하면, 냉전시기 대결 상태로 되돌아가 언제라도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군사 분쟁 등이 재발할 수 있게 됐다.
북쪽의 이런 공세는 유감스럽다. 조평통 성명은 “남쪽 보수 당국의 무분별한 반북 대결 책동”이 “남북 관계를 전쟁에 가까운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성명 자체가 남북 관계를 해치는 것이다. 그동안의 남북 합의는 어느 한쪽의 무효화 선언으로 없어질 수 있는 게 아니며, 합의가 무시될수록 양쪽 두루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성명이 ‘이명박 역도’ 등의 거친 표현을 되풀이해 쓴 것도 눈에 거슬린다.
성명은 여러 효과를 노리고 있다. 우선 미국 새 정부에 한반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 조기 직접협상을 유도하고, 내부적으로 결속을 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가장 큰 목적은 남쪽이 대북정책을 바꾸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북쪽은 일관되게 10·4 및 6·15 선언의 존중과 성실한 이행을 요구했으며, 이번 성명도 그 연장선에 있다. 곧, 북쪽 주장의 핵심은 ‘남쪽이 두 선언을 이행하지 않으니 우리도 다른 합의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성명에 대해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국은 힘이 약한 북쪽이 굽히고 들어올 것이라는 방관·무시 정책이다. 남북 관계가 더 나빠지더라도 한-미 공조만 튼튼하면 별문제가 아니라는 인식도 뿌리깊다. 이런 태도는 잘못이다. 한-미 관계나 북-미 관계가 남북 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다. 또한, 전임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초기 대북정책에서 확인했듯이 방관·무시 정책은 적대 정책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사태를 푸는 열쇠는 10·4 및 6·15 선언에 대한 정부 의지에 있다. 북쪽 압박이 아니더라도 두 선언은 제대로 이행돼야 하고 정부의 대북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남북 상생과 공영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대결을 추구해 사태를 악화시키는 정부의 모순된 태도는 청산돼야 한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가장 나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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