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03 23:17
수정 : 2009.02.03 23:17
사설
지난해 10월 수시 2-2 1단계 전형에서 드러난 고교 등급제 적용 의혹에 대해 고려대가 더는 피해 가기 어렵게 됐다. 믿었던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조사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고, 교육과학기술부마저 고려대로 하여금 석명토록 압박하고 있는 까닭이다. 학생, 학부모, 일선 학교 교사 등의 열화 같은 반발에 밀려 우군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고려대는 그동안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느니, 대교협을 통해 충분히 해명했다느니 하며 버텨 왔다.
사실 고려대가 그렇게 버틴 것은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신으로만 선발하겠다는 수시 2-2 1단계 전형에서 외고 7~8등급은 합격시키고 일반고 1~2등급은 탈락시켰으니 더 무슨 해명이 필요할까. 게다가 일반고 출신 가운데서도 교과나 비교과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떨어지고, 그보다 못한 학생이 합격하는 기현상까지 속출했다. 고교 등급제를 떠나 ‘입시 사고’ 혹은 ‘입시 부정’ 의혹마저 제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더 버티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04년에도 고려대는 연세대·이화여대와 함께 고교 등급제를 적용해 당시 교육부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사안의 성격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수만명의 수험생을 치사한 방법으로 기만하고 막대한 경제적 이득까지 챙긴 것이다. 고려대는 수시 2-2 전형을 학생부 우선 선발이라고 선전해 왔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 실천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수능 우선 선발도 있고, 외고생을 특별히 우대하는 글로벌 전형도 있던 터여서, 수험생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결국 17배수를 뽑는 1단계에 수만명이 지원했고, 고려대는 선전 효과 이외에 수십억원대의 전형료도 부수입으로 올렸다. 미리 고교별 차등 방침을 밝혔다면 수만명의 수험생들은 시간과 정성과 돈을 아끼고, 탈락에 따른 좌절도 겪지 않았을 터이다. 고려대는 어린 학생을 상대로 야바위꾼 같은 사기를 친 셈이다.
이제 고려대가 선택할 길을 많지 않다. 대교협과 교과부를 믿고 버티다가는 그야말로 ‘야바위 고대’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대교협의 조사 결과와 관계없이 고소·고발 사태도 예상되고 있다. 고대 스스로 입학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심판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명예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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