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03 23:18
수정 : 2009.02.03 23:18
사설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걱정한 대로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농성자들이 뿌린 시너에 화염병 불이 붙어 참사가 빚어졌을 뿐, 경찰에겐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과잉 진압이 아니라는 경찰 주장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모양이다. 최종 결론까지 그리 되면, 사람을 여섯이나 죽게 한 일을 정당화하려 검사 수십 명을 동원한 꼴이 된다.
검찰 수사에 맞춰 여권도 말을 바꾸고 있다. 참사 직후만 해도 경찰 수뇌부 인책론이 무성했던 한나라당은 느닷없이 ‘좌파’를 비난하고 나섰다. 애초 경찰 진압을 “무리한 대응”이라고 비판했던 한 최고위원은 그제 과잉진압 책임자 사퇴 주장을 “반정부 세력의 체제전복 시도”라고 주장했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사퇴를 주장했던 원내대표도 “정권 타도를 외치는 반정부 세력” 운운하며 거들었다. 경찰청장 내정을 철회할 뜻이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 뒤에 그런 ‘색깔론’이 나왔으니, 그 의도가 불 보듯 뻔하다. 법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 같다. 망자의 억울함과 국민의 충격을 달래지는 못할 망정, 정략적 공세로 곤경을 모면하려는 그 뻔뻔함이 놀랍다.
이런 행태를 두고선 ‘야만’ 말고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사람이 그렇게 죽고 다쳤는데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국민의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게 바로 전체주의와 독재다. 나치 독일 등은 범법자들에 대해선 정상적인 사법체계 대신 폭력적인 국가 물리력을 동원한 살인도 무방하다는 태도였다. 경찰이 용산 철거민들의 화염병 저항 동영상 등을 홍보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여,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검찰까지 법 논리를 동원해 이런 야만에 힘을 보태선 안 된다. 법적으로 봐도, 이번 참사에선 경찰에게 과실의 책임을 묻는 게 마땅해 보인다. 철거민들은 물론 경찰 자신의 안전 대책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었던 위험한 과잉 진압을 정당화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진압을 승인하고 때맞춰 보고까지 받은 김석기 내정자 등에게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도 검찰이 정권 뜻대로 면죄부를 준다면 편파·왜곡이란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검찰의 신뢰가 이번 사건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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