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06 19:42
수정 : 2009.02.06 19:42
사설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민주노총)이 소속 간부가 저지른 여성 조합원 성폭력 사건을 조직적으로 숨기려 했음이 밝혀져 파문이 커지고 있다. 부위원장 등 간부들이 사퇴하고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민주노총은 대국민 사과에서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직 규율·교육을 강화하겠다”며 “피해자의 상처 치유와 피해에 모든 보상을 다하고, 2차 피해가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이런 대국민 사과 내용은 안일하기 그지없다. 성폭력 피해자 쪽이 밝힌 사태의 전개과정을 보면 단순히 교육과 규율 강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대리인들은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이명박 정부와 싸워야 하는데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 조직이 심각한 상처를 받는다”며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피해자를 회유·압박했다고 밝혔다. 또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하겠다고 하고서는, 간부들이 스스로 나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여과 없이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다고 한다. 기본적인 도덕성과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이 있는 조직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은 아직도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동안 여러 사건에서 확인됐듯이, 문제가 제기돼도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처벌을 통해 피해자가 구제되는 일보다는, 그 과정에서 소문이 확산되는 등 피해자에게 이중 삼중의 추가 피해가 발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인권적 감수성이 있는 조직이라면 이런 사건을 처리함에서 피해자의 추가 피해를 막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했다. 민주노총의 이번 사건 처리과정에서는 그런 배려를 눈을 씻고 찾을래도 찾을 수 없다. 정부와 싸우기 위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는 인식도 문제다.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조직원 인권을 유린하는 게 얼마나 부도덕한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구성원이나 사회의 믿음을 얻을 수 없다.
민주노총이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뼈를 깎는 각오로 관련자를 엄중히 징계하고, 오늘의 사태를 낳은 문제점을 근본에서부터 철저히 규명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가뜩이나 악화되고 있는 노동여건을 고려할 때 민주노총이 표류할 시간이 없다. 이 와중에 분파간의 갈등설까지 나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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