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08 21:58
수정 : 2009.02.08 21:58
사설
서울·제주를 제외한 14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실무자들이 모여 단체장 업무추진비의 정보공개 범위와 내용을 사전 조율했다고 한다. 광역자치단체들은 ‘업무추진비 정보공개가 처음이라 실무자들끼리 의견교환을 한 것일 뿐’이라고 밝히지만, 단순히 모르는 걸 서로 물어보는 정도라면 굳이 대전에 모여서 회의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공개 이후에 혹시라도 문제가 불거질까봐, 공개 범위와 내용을 세밀하게 미리 짬짜미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자치단체장들이 직무 수행이나 정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사용하는 ‘업무추진비’는 사용처와 기준이 불분명해 오래전부터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단체장들이 정치적 목적에서 쌈짓돈처럼 활용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2007년 대법원이 자치단체장 업무추진비 내용을 공개하는 게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건, 국민의 알 권리와 투명한 예산 집행의 필요성을 충분히 고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들이 미리 공개 범위와 내용을 협의하게 되면, 법원 판결 취지와는 다르게 정보공개 범위는 축소되고 내용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광역자치단체들이 공개한 지난 2년간의 단체장 업무추진비 내용을 살펴보면, ‘도정발전 협조자 격려 200만원’ 식으로 도대체 어떤 모임에서 어떻게 돈을 썼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표현들이 가득하다. 이래선 내용을 공개하더라도 그게 합당한 지출이었는지 주민들로선 알 수가 없다. 결국 이런 식의 공개 기준을 지자체 실무자들이 사전 협의를 거쳐서 정한 셈이니, 지방자치단체들이 서로 짜고 국민의 눈을 가리려 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단체장의 돈 씀씀이가 투명하지 않으면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 신뢰는 깊어질 수 없다. 아직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뿌리가 튼실하지 못하다. 자치단체장들은 업무추진비 내용을 숨길 게 아니라 투명하고 떳떳하게 공개해 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게 지방자치를 살리는 첫걸음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