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09 19:28
수정 : 2009.02.09 19:28
사설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걱정한 대로 과잉 폭력진압의 희생자인 철거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죄를 씌우고, 경찰 쪽은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꼴이다. 정확한 진상 규명도, 중립적인 자세도, 법과 원칙도 찾을 길 없다. 대신 정치적 이해타산만 두드러진다.
검찰 수사는 사건의 진상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검찰은 참사를 부른 건물 망루의 화재가 ‘철거민들이 뿌린 시너에 화염병 불이 번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검찰도 인정한 것처럼 추정일 뿐이다. 시너 화재에 물을 뿌려 불을 키웠다는, 경찰의 화재 책임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이것말고도 가려지지 않은 의혹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고도 철거민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순 없는 일이다.
검찰의 ‘외눈박이 행태’는 경찰 책임 문제에서 유독 심하다. 경찰은 철거민들의 농성 시작 열 시간도 안 돼 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 농성으로 말미암은 피해나 위험이 구체화되지도 않았고, 진압보다 대화가 필요한 때였는데도 그리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화염병·시너 등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이유로 경찰의 조기 진압을 옹호했다. 그러면서 정작 그런 위험요소를 무시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참사가 빚어졌다는 지적에 대해선 ‘경찰 책임 밖의 일’이라고 편들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따로 없다.
검찰 수사가 미리 정해둔 방향대로 진행됐다는 의혹은 이것말고도 많다. 검찰은 경찰은 물론 용역업체에 불리한 여러 의혹과 혐의에 대해 ‘몰랐다’거나 ‘별문제 아니다’라며 무시하다가, 언론 등을 통해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면 그제야 마지못해 수사에 나서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조차 ‘눈가림 수사’라는 비판이 많았다. 이번에도 명백한 용역업체의 일부 불법행위는 기소했지만, 경찰과 용역의 공조 의혹 등에 대해선 경찰 무전기록 등 여러 증거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이를 부인했다. 그런 의혹이 확인되면 이번 진압을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볼 수 없는 탓일 터이다. 이런 ‘짜집기 수사’로 법과 원칙을 말하니 가당치도 않다.
이런 검찰 수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검찰 수사는 여러 흠은 물론, 그 정치적 배경까지도 의심받고 있다. 참사 초기부터 이명박 정부는 경찰을 두둔하고 ‘정당한 공권력 집행’을 강조하는 등 검찰 수사의 방향을 미리 정하는 듯한 언동을 했다. 이번 검찰 수사는 결과적으로 그런 지침을 충실히 반영했다. 이를 그대로 인정해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쪽에 면죄부를 준다면 언제라도 이번 같은 참극이 되풀이될 수 있다.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서라도 재수사를 통해 책임을 가리는 게 마땅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맞춘 듯, “법과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대통령의 그런 태도는, 공권력의 깃발을 내건다면 과실치사의 잘못 따위는 묻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국민 목숨을 아랑곳않는 오만과 독선이고, “야만적인 법질서 의식”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번 수사결과를 빌미로 그렇게 강압과 폭압의 밀어붙이기를 계속하려 한다면 온나라가 지금보다 더한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법과 원칙’은 당장 거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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