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09 19:29
수정 : 2009.02.09 19:29
사설
강아무개의 연쇄살인 사건을 계기로 한나라당 등 여권에서 사형 집행론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2일 이명박 대통령이 “당에서 논의해 달라”고 한 뒤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자들이 앞장서 사형 확정자 형 집행을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런 내용을 담은 공문을 지난주 법무부에 보낸 데 이어 오는 12일 사형제와 관련한 당정협의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권의 이런 움직임은 그동안 조금씩 진전돼 온 인권 개선 흐름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다시 인권 후진국 대열로 되돌아가자는 뜻이다. 말이 안 된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을 한 번도 집행하지 않아 2007년 12월 국제사면위원회로부터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인정받았다. 인권단체 등의 노력에 힘입어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졌기 때문이다. 17대 국회 때 과반이 훨씬 넘는 175명의 여야 의원들이 사형 폐지법안을 낸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의 생명권은 최고의 가치다. 누구도 이를 박탈할 권리가 없다. 더구나 사형제와 범죄 예방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래전에 사형이 폐지된 영국과 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사회질서가 후퇴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오히려 사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중국과 미국·일본 등에서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법률신문>이 국내 헌법학자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66.7%가 사형 집행을 반대했다. 또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63%가 폐지를 요구했다. 물론 일반 국민의 여론은 이와 다르며, 특히 강씨 사건 이후 사형 집행 여론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이 보편적인 인권 기준을 외면한 채 일시적이고 감정적 경향이 강한 여론에 편승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유럽 쪽 나라들 역시 사형제를 없앨 당시 여론은 사형제 존속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미래를 위해 ‘가야 할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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