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11 20:07
수정 : 2009.02.11 20:07
사설
원세훈 국정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치정보 수집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책 결정이 정치 부문에서 이뤄지고 체제전복 세력에겐 정치가 침투대상이므로 안 할 수 없다”는 게 그의 논리다.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냉전시대의 끔찍한 추억’ 정도로만 다뤄지는데, 그걸 다시 부활하겠다고 하니 지금 대한민국은 21세기를 사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우선, 원 후보자의 말은 국정원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위법적 발언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정보기관은 정치 사찰을 무기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를 막기 위해 현행 국정원법에선 국정원 업무범위를 대공·대테러 등으로 비교적 엄격하게 제한했던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장 후보자란 사람이 벌써 법을 무시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는 걸 보면, 앞으로 원세훈 체제의 국정원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얼마나 탈법·불법적 행동을 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원 후보자의 발언을 뜯어보면, 정치권뿐 아니라 ‘정책 결정’을 하는 모든 부처·기관도 사찰 대상이 될 게 분명하다. 체제전복 세력이 정치권에만 침투할 리 없으므로, 사회 모든 분야도 역시 국정원 감시대상에 올라간다. 원 후보자는 “정치 관여 비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보기관 속성상 일단 물꼬가 트이면 그 행동반경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측근이라지만 이런 생각을 떳떳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국가정보원장에 내정한 이명박 대통령의 시대착오가 놀랍다.
도덕성 측면에서도 투기 의혹을 받은 등 문제가 적잖다. 원 후보자의 부인 이아무개씨는 경기도 포천 땅을 매입하고도 등기부등본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농지법 위반 등을 회피하려는 것이란 의혹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원 후보자는 모르쇠로 일관할 뿐 명확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 역시 도덕성과 직무수행 능력에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가 부친 소유 제주도 택시회사 땅을 2006년 3월 편법으로 증여받았다는 의혹은 청문회를 거치면서 더 커졌다. 그는 부친이 회사 직원을 ‘자식같이’ 아끼다 보니 거래가 복잡해졌다고 했으나, 앞서 부친은 대법원 판결이 있었음에도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아 파업과 직장폐쇄까지 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거짓 해명을 한 셈이다. 논문 이중게재와 자녀 위장전입 의혹 등에서도 고위 공직자에게 필수적인 윤리성과 준법정신에서 큰 결함을 드러냈다.
통일부 폐지와 관련한 그의 답변도 위증 의혹이 짙다. 그는 통일부 폐지에 찬성한 적이 없다고 했으나 지난해 1월16일 대통령직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대북정책 방향에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비핵·개방 3000 정책에 매달리는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원세훈씨와 현인택씨는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으로 매우 적절치 못한 인사들이다. 이 대통령이 우리 사회를 군부독재 시절로 되돌릴 생각이 아니라면, 원세훈 국정원장 임명을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 현인택 후보자 역시 통일정책을 책임지는 부처의 수장이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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