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15 21:12
수정 : 2009.02.15 23:30
사설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검찰의 부실·왜곡 수사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경찰이 검찰 수사에 맞춰 조직적으로 ‘말 맞추기’를 했다는 폭로다.
경찰 내부에서 나온 듯한 제보를 보면, 경찰은 참사 현장에 용역업체 직원들이 동원됐다는 텔레비전 보도 직후, 경찰기동대 간부들로 대책회의를 열어 ‘검찰에 출석하면 용역요원들을 못 봤다고 진술해야 한다’고 강요했다고 한다. 경찰은 당시 회의가 보도된 동영상을 확인하는 자리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대로 믿긴 어렵다. 제보의 내용이 구체적일뿐더러,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말을 바꾸고 거짓 해명을 일삼은 탓이다.
이런 식의 대책회의가 또 없었는지, 그런 회의에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치려 한 다른 시도는 없었는지 등은 당연히 뒤따르는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이 가해자라 할 수 있는 경찰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많은 터다. 검찰로서도 경찰에게 속은 건 아닌지, 또는 알면서 눈감아준 건 아닌지 따위의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실제 검찰 수사를 보면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제보대로라면 경찰조차 기동대원들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봤지만, 검찰은 이들에 대해 조서조차 받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당시 현장 진압책임자라는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장은 시너 화재 현장에 물포를 쏘라고 지시해 불을 번지게 하고, 용역직원들을 경찰과 함께 투입하도록 지시한 사람으로 지목되는데도 검찰 수사에선 제대로 그 책임을 추궁받지 않았다고 한다. 참사의 원인 및 불법 책임과 관련해 중요한 혐의인데도 그러했으니, 도저히 제대로 된 수사라고 할 수 없다.
검찰이 진술을 왜곡했다는 의혹마저 있다. 발화 원인에 대한 검찰 추정의 중요한 근거로 제시됐던 한 철거민의 진술이 실제 조서 작성 과정에선 정정돼 빠졌는데도 검찰이 변호인의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대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검찰 추정과는 다른 소방관의 진술도 검찰 조사에서 무시됐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검찰이 틀에 맞춰 멋대로 조사 결과를 뜯거나 붙인 셈이다.
이쯤 되면 일주일 전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를 그대로 믿긴 어렵다. 제기된 의혹들이 하나같이 법적 책임을 뒤바꿀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서라도 전면 재수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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