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18 19:49
수정 : 2009.02.18 19:49
사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어제(한국시각) 아프가니스탄에 병력 1만7천명을 증파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그가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아프간 군사개입 강화의 시작이다. 새 병력이 올 여름까지 배치되면 아프간 주둔 미군은 5만명이 넘게 된다.
미국의 섣부른 아프간 증파는 실패로 끝난 이라크 장기점령의 전철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목표가 뭔지 분명하지 않다. 현지 치안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므로 병력을 더 보내야 한다는 일차원적 대응으로는 아프간 문제를 풀 수 없다. 알카에다의 고립과 무력화가 최종 목표라면 기존 전략의 성패를 폭넓게 재검토하고 국제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수다. 특히 토착 정치세력 성격이 강한 탈레반을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시도는 바뀌어야 한다. 정당하고 효과적인 아프간 정책이 뭔지 충분한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병력부터 늘리고 각국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 딱한 것은 여권 일부의 태도다. 한나라당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군 아프간 파병 가능성 사전 점검과 미국의 반대급부 확인 등의 내용을 담은 내부문건을 마련했다고 한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공식기구에 보고된 문서는 아니라면서도, 파병 대가로 미국에 첨단무기를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조건 파병을 전제로 남북 군비경쟁을 꾀하려는 한심한 발상이다. 고위 당직자가 이런 말을 하는 데는 당내 분위기가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민간 재건지원팀(PRT)의 규모를 지금의 3~4배인 100명선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방침이 어떤 경우에도 파병으로 가는 길닦기로 이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재건지원팀 증원도 현지 여건과 요구를 고려해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2007년 7월 한국인 23명이 현지에서 피랍될 때와 비슷한 상황이 다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외무장관 회담이 내일 서울에서 열린다. 최대 현안인 북한 핵 문제에서는 6자 회담을 새로운 차원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포괄협상 틀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아프간 문제에서는 미국이 이라크에서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조언하면서 한국군 파병은 없음을 분명히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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