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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20 20:26 수정 : 2009.02.20 20:26

사설

이제 김수환 추기경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 한 줌 물과 바람과 불과 흙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와 함께했던 저 아름다운 동행과 웅혼한 울림마저 사라질 순 없다. 그는 지금도 바로 여기서 말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

세상 사람이 간절히 축원했듯이 그는 어쩌면 저 복락의 땅으로 떠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분의 영혼은 살아생전 한사코 떠나려 하지 않았던 그곳,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의 가슴에 눈물 흘리며 있을 것이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그 모든 이들의 꿈과 희망과 복음으로. 의에 목마른 이들의 그리움으로, 선한 마음으로, 불굴의 행함으로, 함께하는 사랑으로 그 향기를 뿌릴 것이다.

그들 가슴에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불의한 권력에 두들겨맞고, 똥물까지 뒤집어쓴 동일방직 여공들이 피난했을 때 울부짖었듯이, “이 나라의 법은 약한 이들을 벌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박종철씨가 고문 끝에 죽임을 당했을 때 절규했듯이, “하느님은 묻고 계신다, 박종철은 어디에 있느냐고.” 상계동 철거민들이 명동에 보금자리를 틀었을 때 저 무지한 권력을 위해 기도했듯이,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말보다는 온전한 행함으로 하늘의 의로움을 실천했다. 성탄 미사는 철거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버려진 이들과 함께했다. 매매춘 여성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떡을 나눴다. 불의한 권력에는 추상같았지만, 그들에게 밟히고 쫓기던 이들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웠다. 1980년 봄, 죽음의 권력 앞에서 모두 두려워 떨 때 그는 광주를 위로하고 가진 것을 내주었다. 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왔을 때, 그 피의 금남로와 도청 앞 광장으로 인도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과 함께하는 사랑으로 가야 한다”던 그의 말은 곧 행함이었다.

그의 돌아올 수 없음으로 하여, 그의 기도는 더 또렷해지는가. 온전히 하늘의 의를 구하는 이여, 지금도 먹구름이 드리워진 저 용산의 하늘에, 저 갈 곳 없이 쫓겨난 이들의 가슴에, 상처받은 이들, 꺼져가는 모든 생명의 한숨 속에 당신의 의를 이루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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