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24 19:25
수정 : 2009.02.24 19:25
사설
지난해 촛불집회 관련 형사사건들이 통상 절차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수 성향의 특정 판사에게 집중 배당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한 동료 판사들의 집단적인 문제제기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재판 결과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면, 이는 헌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할 법관의 소임을 법원 스스로 부정한 게 된다. 흐지부지 넘길 일이 아니다.
법원 고위층은 당시 사건 배당이 정상적이고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애초 문제될 게 없었다면 평판사들의 이의 제기에 배당 방식을 통상 절차대로 되돌릴 이유부터 없었을 것이다. 비슷한 사건에 대해선 결론이나 양형의 차이를 막기 위해 ‘몰아주기 배당’을 하는 게 관행이라는 법원의 설명도 사실과 다르다. 지금 법원에선 전문적인 사건을 제외한 일반 형사사건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무작위로 배당한다. 재판의 신뢰를 위해서다. 쟁점이 같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예외적으로 인위적 배당을 허용하는 대법원 예규 규정이 있지만, 집회·시위 관련 사건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일반 사건으로 분류하는 게 그동안의 관행이라고 한다. 더구나 문제된 촛불 관련 사건들은 그 내용과 적용 법률이 저마다 달라, 비슷한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국사건 몰아주기 배당은 과거 권위주의 때나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실제 결과를 보면, 의심은 더욱 깊어진다. 핵심 쟁점인 야간 옥외집회 금지 규정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로 재판을 연기한 다른 판사들과 달리, 애초 집중 배당을 받은 판사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기각하면서 판결을 강행했다. 형량도 하나같이 사건 내용에 견줘 과도해 보인다. 그런 점까지 고려해 배당한 것이라면, ‘정치 법원’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지 않아도 법질서를 앞세운 정부의 강경 선회 이후 법원이 무리한 영장 발부 등으로 ‘코드 맞추기’를 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재판을 조정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는 말이 법원 안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젊은 판사들의 문제제기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법원의 독립은 법원 자체의 의지와 노력 없이는 지킬 수 없다. 이번 일이 사법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를 막자면 법원 스스로 의혹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대법원장이라도 나서서 국민에게 설명하고, 사과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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