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25 20:39
수정 : 2009.02.25 20:39
사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을 맡았던 대법원 옛 2부 대법관들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긴다는 결론을 이미 내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치열한 심리를 벌였으나 의견을 일치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1월 중순 이렇게 결정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소부는 판례를 바꾸려 하거나 소속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해당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넘기게 된다. 에버랜드 사건은 자동으로 그렇게 돼야 했다. 지난해 대법원에 넘어온 삼성특검 사건도 에버랜드 사건과 법적 쟁점이 같기 때문에 함께 전원합의체로 넘기는 게 불가피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한 달이 지나도록 정해진 회부 절차를 밟지 않았다. 대신, 2월18일자로 소부를 개편해 삼성 관련 두 사건의 담당 재판관들을 상당수 바꿨다. 그러고선 어제부터 개편된 소부에서 두 사건 심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 뒤 재판부 개편을 이유로 다시 소부에서 논의하는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옛 2부 대법관들의 결정을 뭉개버린 꼴이니, 대법원 스스로 대법관들의 재판권을 무력화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대법원의 이런 처사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각종 ‘억측’을 낳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소부 개편을 두고, 삼성 사건에 대해 의견이 다른 대법관을 배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개변론이 불가피한 전원합의체 대신 소부에서 시간을 끌면서 걱정되는 내용의 판결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도 없지 않다. 대법원이 그런 의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사법부 전체의 권위를 훼손한다.
대법원은 지금이라도 서둘러 삼성특검 사건과 에버랜드 사건을 함께 전원합의체로 넘겨야 한다. 두 사건은 같은 쟁점을 지녔는데도 하급심의 결론이 전혀 달랐고, 삼성특검 사건은 아예 대법원의 기존 판례와도 어긋난다. 삼성특검 사건의 경우 항소심 재판부가 전원재판부의 판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더라도 전원합의체 상정을 피할 순 없다. 그 경우 변호사 시절 에버랜드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스스로 전원합의체에서 빠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 모양새가 흉할 것을 걱정해 전원합의체 회부를 피하는 건 옳지도 않을뿐더러, 국민을 이해시킬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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