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25 20:41
수정 : 2009.02.25 20:41
사설
30대 그룹들이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을 깎아 일자리 늘리기에 쓰겠다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30대 그룹 인사담당 임원들이 어제 합의한 것을 보면, 기업별로 대졸 초임이 2600만원을 넘는 경우 여건에 따라 최대 28%까지 삭감하기로 했다. 금액으로는 연봉이 1000만원까지 줄어드는 수준이다. 초임이 2600만원 미만인 기업도 전반적인 하향조정을 유도하기로 했다.
재계는 올해 일자리가 20만자리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돼 고용안정과 일자리 지키기에 전방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방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초임을 줄이고 그 재원을 고용안정 및 신규·인턴 채용에 쓰겠다는 것은, 언뜻 어려운 경제여건에 따른 조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적절하지 않으며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올봄 대량실업이 우려되자 사회 불안을 우려한 정부가 어떻게든 인력 충원을 늘려 보자 하고, 재계는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아 이에 화답한 편법에 가깝다.
기업들이 해고를 자제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좋지만, 필요 이상으로 채용을 늘리면 조직의 비효율화를 낳는다. 따라서 우선은 취업문이 조금이나마 넓어져 반가운 듯하지만 머지않아 군살처럼 돼 이들의 신분이 불안해질 우려가 크다. 고용 확대형 일자리 나누기는 네덜란드처럼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전제돼야 그나마 효과가 있는데 우리는 여건이 그렇지 못하다.
노사 협의 없이 재계가 경제위기를 빌미로 노동자의 희생만 요구하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엊그제 노·사·민·정 합의에서 기존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 또는 삭감하고 노조는 파업을 자제하기로 한 데 이어, 또다시 노동 쪽에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노동단체들이 반발할 게 뻔하다. 신입사원과 기존 직원들 사이 임금격차는 형평에 어긋나며 기존 직원들도 임금 삭감을 종용받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그런 발상은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임금 삭감은 신중해야 한다. 임금이 줄어들면 소비가 줄고 내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 비해 형편이 훨씬 나은 대기업들은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 고통을 분담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한다. 고용 유지 측면에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게 더 바람직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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