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26 20:18
수정 : 2009.02.26 20:18
사설
한나라당이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미디어 관련법안을 기습 상정한 데 맞서 민주당은 모든 국회 일정을 거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어제 대부분의 상임위가 열리지 못했으며, 다음달 3일 임시국회 폐회 때까지 파행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나라당이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려고 시도할 경우 또다시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전체 의석의 과반이 넘는 172석을 가진 여당으로서는 야당의 반대에 막혀 법안 처리가 제때 안 되는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여당이 다수로 밀어붙이는 힘의 정치에 곧잘 유혹되는 까닭이다. 이번 미디어 관련 법안의 상임위 변칙 상정은 독단적인 정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역사가 보여주듯 여당의 밀어붙이기는 결국 참담한 실패로 귀결될 뿐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바라는 품격 높은 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력을 발휘하기는커녕 걸핏하면 문을 걸어잠그거나 기습적으로 야당을 속이는 치졸한 방식에 어느 국민이 박수를 보낼 수 있겠는가. 이러니 늘 삼류 정치라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미디어 관련법안은 여야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논란이 큰 사안이다. 상임위 상정이 급한 게 아니라 미리 충분하게 의견을 수렴하는 게 중요하다. 여권의 몇 사람이 밀실에서 만든 법안을 무조건 상정부터 하자는 속셈을 모를 국민은 많지 않다. 상임위에서 야당이 반대하면 곧바로 의장 직권상정으로 강행처리하겠다는 뜻 아닌가. 논란이 많은 사안을 숫자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독재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국회를 굳이 따로 둘 필요가 없다.
미디어 법안을 상정하는 과정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 한나라당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하지만, 의사일정 변경에 대해 여야간에 합의가 없었던 것이나 상정 이전에 의안을 배부하지 않은 것 등은 중대한 결격 사유다. 특히 고흥길 위원장이 상정할 법안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고 의안에도 없는 “미디어법 등 22개 법안”이라고 모호하게 말했을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상정한다”는 선언을 마치지 못했다. 고 위원장의 말은 장내 소란에 묻혀 현장을 담은 국회방송의 녹음 테이프에도 없다고 한다. 따라서 상정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요건을 갖췄다고 하기 어렵다.
현재 상태대로라면 법안 상정의 적법성 여부를 놓고 법정으로 갈 공산이 크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기 전에 국회가 스스로 풀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변칙 상정 시도를 사과하고, 미디어 법안의 상정을 철회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민주당 등 야당도 순수 경제 관련 법안 등 시급한 안건 처리에 협조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국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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