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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26 20:21 수정 : 2009.02.26 20:21

사설

고교등급제 적용은 없었다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고려대 조사 결과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대학의 민원창구 혹은 이익단체에 불과한 대교협이 회원에게 불리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면 그게 오산이었다. ‘복잡한 입학전형에 대해선 잘 모르니 고려대에 물어보라’는 투의 대교협 회장의 발언은 무책임의 극치다.

대교협이나 고려대는 그 근거로, 특목고 내신 1~2등급 학생이 떨어지고 일반고 4~5등급이 붙었다는 사례를 꼽았다. 그러나 이것은 특목고 사이에도 등급을 적용했을 가능성만 보여줄 뿐, 등급제를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 되지 못한다. 특목고 중에도 이른바 주요 대학 입학 실적이 천차만별이고, 일반고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 실제 90% 이상 합격한 외고가 있는가 하면 50%를 밑도는 외고도 있다.

대교협은 이미 영어 지문을 포함하거나 문제풀이 과정 및 정답을 요구하는, 본고사형 논술시험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줬다. 주요 대학들이 2012년부터 수시에 본고사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잇달아 밝힌 것은 이 때문이었다. 고려대 문제를 계기로 고교등급제마저 무력화됐으니, ‘3불 정책’ 가운데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는 유명무실해졌다. 앞에서는 여론을 의식해 3불 정책 유지를 공언하고, 뒤로는 무력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교협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규제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은 대교협의 태생적 한계다. 그런 단체에 규제권을 넘긴 정부가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대입제도는 그 방향에 따라 학교 교육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초등생부터 입시교육에 매달리고, 학교 교육이 파탄 상태에 이른 것은, 특목고를 우대하고 점수로 줄을 세워 선발하는 지금의 대학입시가 빚어낸 결과다. 정부의 규제에도 그렇게 해 온 대학들에 사회적 책무의 자발적 실천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지금 국회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개정안을 보면,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입시에 간여할 수 없고, 설사 대학이 고교등급제 적용 불가 원칙을 어긴다 해도 대교협의 요청이 있어야만 제재할 수 있다. 이제 대교협은 대학을 규제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이 분명해졌다. 정부는 대학의 방종을 부채질할 이 법안을 철회하고, 합리적인 조정과 규제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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